삼성전자(005930), SK(034730), LG(003550) 등 재계 총수들이 잇따라 미국 출장길에 오르고 있다. 글로벌 산업 환경이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AI 기술력과 인력이 몰린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고 있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2일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지난 4월 미국 새너제이 엔비디아 본사에서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와 회동한 지 2개월 만에 또다시 미국을 찾는 것이다.
최 회장은 앞서 지난 6일에는 대만을 찾아 글로벌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의 웨이저자 이사회 의장(회장)과 만나 “인류에 도움되는 AI 시대 초석을 함께 열어가자”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실리콘밸리에 있는 주요 빅테크와 AI 메모리 관련 협력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를 비롯해 AMD, 인텔 등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과 만남도 예상된다.
최 회장의 이번 출장에는 유영상 SK텔레콤(017670) 사장, 김주선 SK하이닉스(000660) 사장 등 경영진이 동행했다.
SK그룹은 반도체부터 서비스까지 AI 생태계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시스템 구현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AI 서버 구축에 최적화된 고용량 DDR5 모듈, 엔터프라이즈 SSD(eSSD) 등을 생산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생성형 AI 서비스 ‘에이닷’으로 개인비서 기능을 제공하면서 4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앞서, 이재용 삼성(삼성전자(005930)) 회장과 구광모 LG(003550)그룹 회장도 미국 출장을 통해 AI 관련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미래 사업 전략을 점검했다.
지난 13일 귀국한 이 회장은 미국 동·서부를 가로지르는 2주간의 출장에서 글로벌 CEO들과 중장기 비전을 공유하고 미래 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지난 11일(현지 시각)에는 미국 서부 팔로 알토에 있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의 자택으로 초청받아 단독 미팅을 했다. 지난 2월 저커버그 CEO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삼성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회동한 지 4개월 만이다.
두 사람은 AI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미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과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장은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사장 겸 CEO, 앤디 재시 아마존 CEO 등도 만나 AI 반도체 협력 강화를 요청했다.
구 회장은 지난 17일부터 나흘간 미국 테네시와 실리콘밸리를 방문해 북미 현지 사업과 미래준비 현황을 점거하고 향후 전략을 논의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는 LG 사업장 외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AI 스타트업을 찾아 AI 분야 최신 기술 동향을 살폈다.
구 회장은 ‘반도체 전설’로 불리는 짐 켈러 텐스토렌트 CEO와 만나 AI 확산에 따른 반도체 산업 영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AI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 AI를 찾아 휴머노이드 로봇 ‘피규어 원’의 구동을 살펴보기도 했다.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도 조만간 미국 출장길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10월 조지아주에 있는 전동화 차량 전용 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준공식을 개최할 예정인데, 정 회장이 직접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정 회장은 2022년 10월 HMGMA 기공식에 이어, 작년 9월에도 조지아주를 방문해 직접 현장을 점검한 적이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오는 9월 미국의 금리 인하가 예상되면서 기업들이 투자가 늘어나는 등 AI, 반도체 분야의 본격적인 상승 사이클 전환이 예상된다”라며 “AI 캐즘(초기 시장 성장 단계와 대중화 시기 사이 발생하는 정체)을 벗어날 기회인 만큼 AI 생태계 선점을 노린 총수들의 미국 방문이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