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소송 항소심 재판부가 SK㈜ 주식 가치 상승분 계산을 잘못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삼성SDS 사건 재판부가 주식 가치 계산을 잘못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판결이 뒤집힌 바 있다.

2008년 7월 이 선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 1심 재판부는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적정가액을 주당 9740원으로 계산해 배임액수를 최대 44억원으로 산정했다. 재판부는 삼성SDS 경영진이 제3자 배정방식으로 BW를 저가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고, 이 선대회장 등이 공모했다고 판단했지만 그 규모가 50억원에 미치지 못해 공소시효 만료로 면소 판결했다. 이후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소송 항소심 관련 기자 설명회에 참석해 상고이유를 밝힌 뒤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그러나 당시 경제개혁연대 등은 재판부가 수익가치 기준점을 기업회계기준이 아니라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해 주당 순손익가치를 저평가했다고 주장했다. 삼성SDS BW의 적정 가격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자 대법원은 이듬해 5월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BW의 주당 적정 행사가격을 1만4230원, 배임액은 기존의 4배 이상에 달하는 227억원으로 수정했다. 배임액이 50억원을 넘으면서 이 선대회장은 업무상 배임이 아니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가 적용됐고, 공소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이 선대회장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

최태원 회장 측은 전날 기자회견을 갖고 이혼 항소심 판결에 대해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 측은 재판부가 최 회장이 보유한 SK㈜의 전신인 대한텔레콤(현 SK C&C) 주식 가치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주당 가격을 10배가량 축소하는 실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SK C&C 주식 가치를 최 회장이 주식을 취득한 1994년 11월에 주당 8원,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에 주당 100원, SK C&C가 상장한 2009년 11월에 주당 3만5650원으로 계산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이 주식을 취득하고 최 선대회장 별세까지인 1994~1998년, 별세 이후 2009년까지 가치 증가분을 비교해 최 선대회장의 회사에 대한 기여분은 12.5배, 최 회장의 기여분은 335배로 판단했다. 이는 재판부가 최 회장을 ‘상속승계형’이 아닌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규정된 전제가 됐다.

재판부는 최 회장 측 주장이 나온 직후 판결문 숫자를 수정했다. 최 회장 기여분은 355배에서 35.6배로 줄었고, 최 선대회장의 기여분은 125배로 늘었다. 다만 재판부는 숫자가 달라졌더라도 판결 취지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노소영 관장에게 1조3808억원의 재산을 분할하라는 주문은 유지했다.

최 회장 측은 “재판부 경정 결정은 스스로 오류를 인정했다는 것”이라며 “계산 오류가 재산 분할 범위와 비율 판단의 근거가 된 만큼 단순 경정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 관장 측은 “일부를 침소봉대해 사법부 판단을 방해하려는 (SK) 시도는 매우 유감”이라며 “결론에는 지장이 없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