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는 과거부터 R&D(연구·개발)에 많이 투자해 왔습니다. 이제 그 결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1일 오후 한국공학한림원이 주관하는 ‘2024 IS4T(산업미래전략) 포럼’ 현장에서 만난 장혁 삼성SDI(006400) 상근고문 부사장은 최근 전기차 성장 둔화에도 삼성SDI가 약진하는 배경으로 선제적인 연구개발을 꼽았다. 매년 매출의 5%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지출하는 삼성SDI는 올해도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도 국내에서 가장 앞서나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2년생인 장 부사장은 1992년 삼성전자(005930)에 입사한 후 2017년 삼성SDI 연구소장으로 합류했다. 이후 전자재료사업부장, 소형전지사업부장을 역임한 뒤 2021년 SDI연구소장 및 CTO(최고기술경영자)로 복귀했고, 지난해 말 인사에서 상근고문 부사장으로 위촉돼 기술 관련 자문을 맡고 있다.
장 부사장이 연구소장을 역임했던 최근 3년간 삼성SDI의 연구개발비는 2021년 8776억원, 2022년 1조764억원, 2023년 1조1364억원으로 계속 늘었다. 연구개발비는 국내 배터리 3사 중 가장 많다. 올해 1분기 기준 보유 특허는 국내외를 포함해 총 2만1171개에 달한다.
삼성SDI는 최근 전방 수요 둔화에도 고성능 배터리 P5, P6 제품을 기반으로 비교적 높은 판매량과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4월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SDI 배터리 사용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33.1% 늘어난 10.9기가와트시(GWh)를 기록했다. 시장 점유율은 10.8%로, 전년 동기 대비 1.6%포인트(P) 상승했다. 같은 기간 국내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SK온의 시장 점유율은 각각 25.7%, 10.2%로 전년 동기 대비 1.7%P, 1.5%P 감소했다.
장 부사장은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오는 2027년 전고체 배터리 양산 목표를 밝힌 삼성SDI는 샘플 제작을 목적으로 작년 3월 수원 연구소에 파일럿(시제품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 지난해 6월 첫 샘플 생산 이후 다수 고객사와 협의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파일럿 라인을 만든 뒤 개발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실험실 단계에서 아무리 신기술을 연구해도 배터리는 표준화된 공정을 직접 적용해 봐야 실제 성능을 볼 수 있고, 데이터를 많이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에 현 리튬이온배터리보다 출력이 높은 양극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장 부사장은 “배터리에 니켈 함유량이 많아지면 (전해액과의) 반응이 세진다. 그러나 전고체는 전해액이 없기 때문에 니켈을 더 과감하게 넣을 수 있다. 전고체 배터리용 양극재는 삼성SDI에서 자체 설계·합성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전고체 배터리가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그는 “양산 시점에 전고체 배터리에 들어갈 각종 소재 밸류체인(가치사슬) 수준이 지금의 리튬이온배터리처럼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구조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초기 제품은 가격을 낮추기 쉽지 않겠지만, 시장을 키워 나가면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SDI는 차세대 배터리인 46파이(지름 46㎜) 원통형 배터리 양산도 이르면 연내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 다수의 완성차 업체와 제품 양산과 관련한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 중이다.
장 부사장은 “원통형은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높이를 정한다. 각형 배터리 전문 생산 지역인 헝가리를 제외하고 고객사에 따라 미국, 말레이시아 등에서 양산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