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대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그간 정부가 추진해 오던 반도체 인센티브 확대, 상속세 개편, 벨류업 세액공제 등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등 범야권의 의석수가 190석 안팎에 달해 야당의 동의 없이는 법 개정이 불가능하다. 당장 올해 말 일몰을 앞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연장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K칩스법은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반도체 대기업은 설비투자 시 최대 15%, 중소기업은 25%를 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K칩스법이 올해 말 일몰되면 반도체 대기업의 설비투자 공제율은 기존 15%에서 8%로 줄어든다.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은 K칩스법 일몰을 2030년까지 6년 연장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기획재정위원회에 상정했으나 진척이 없는 상태다. 21대 국회의 임기는 5월 29일까지다. 발의된 법안이 임기 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여기에 반도체·배터리 등 국가전략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세액공제를 현금으로 직접 지급하고 이를 기업 간 거래할 수 있게 하는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도 21대 국회 처리는 사실상 어렵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 경쟁이 산업 전쟁이자 국가 총력전”이라며 전시 수준의 투자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현재 투자 세액공제가 법인세를 공제해주는 방식으로 한정돼 영업손실을 보는 기업은 당장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점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 시행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은 지난 8일(현지 시각) 대만 반도체 업체 TSMC에 66억달러(약 8조 9000억원)에 달하는 반도체 공장 설립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은 TSMC 1공장 건설에 약 4조2000억원을 지원한 데 이어, 2공장에도 최대 6조5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여야 입장차가 뚜렷한 상속세 완화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최대 주주가 기업을 승계받을 때는 상속세율 할증으로 최고세율이 60%로 높아진다. 재계에서는 과도한 상속세 때문에 기업 경영권이 위협받는다고 주장한다.
실제 넥슨그룹은 고 김정주 회장의 유가족이 10조원의 유산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6조원의 상속세를 현금으로 내지 못해 넥슨 지주사인 NXC 지분 29%(4조7000억원)를 물납했다. 지분 29%를 갖게 된 기획재정부는 2대 주주가 됐다.
저평가된 기업의 주가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밸류업 정책도 동력을 잃게 됐다. 정부는 기업이 자사주를 소각하면 이를 비용으로 처리해 법인세를 줄여주는 등 세제 지원을 추진했지만 법 개정이 불투명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총선 후 입법을 전제로 추진하던 정책은 대부분 수정·재검토가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경제 위기 극복과 규제 개혁을 위한 초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