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 기준 세계 6위 일본 컨테이너 선사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에 이어 한국 정부도 HMM(011200)을 중심으로 외항 컨테이너 선대(船隊·보유 중인 선박군)의 선복량을 추가로 확보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세계 해운업계가 공급 확대에 따른 ‘치킨 게임’을 우려하고 있다. 치킨 게임은 한 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 게임이론이다. 미국에서 겁쟁이를 닭(chicken)에 비유한 것에서 유래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부산항 신항 7부두 개장식 기념사에서 2030년까지 한국 국적 컨테이너 선복량을 200만TEU(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까지 확충하고 해상 수송력을 1억4000만DWT(Deadweight Tonnage·배에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의 최대 톤수)까지 키우겠다고 밝혔다. 기존 계획은 2030년까지 150만TEU 이상 확보하는 것이었는데 50만TEU 늘어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해운업계 재편기에 국적 선사를 강력히 지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10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국 외항 컨테이너 선사의 선복량은 약 114만TEU다. 인도를 앞둔 선박(오더북)까지 고려해도 144만TEU다. HMM의 선복량 규모는 104만TEU(인도 예정 물량을 포함)이며 고려해운 17만TEU, 장금상선 16만TEU, SM라인 7만TEU 등이다.
선복량을 더 늘리기로 하면서 정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는 41만6000TEU를 추가했던 2018년 HMM(옛 현대상선) 지원 계획보다 더 강력한 투자 계획을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다. HMM도 이에 맞춰 중장기 투자계획을 재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옛 현대상선은 지난 2018년 이후 2만4000TEU급 12척, 1만6000TEU급 8척의 건조 지원을 받으면서 5년만에 세계 8위 규모의 선사로 거듭났다.
해운업계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을 선박에 투자해 과잉 공급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여기에 HMM이 속한 해운동맹 ‘디 얼라이언스’에서 독일 하파그로이드(Hapag-Loyd)가 탈퇴를 예고해 무한경쟁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한국과 함께 디 얼라이언스에 속한 일본 ONE는 향후 6년간 350억달러(약 47조4000억원)를 투자해 선대 선복량을 총 300만TEU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지난달 밝혔다. 이는 ONE가 2022년 발표한 목표치보다 70만TEU 늘어난 것이다. ONE가 목표를 달성하면 하파그로이드(227만TEU)보다 많은 선복량을 보유해 업계 5위로 올라선다. ONE는 해운동맹 없이도 독자 생존할 역량을 갖추겠다는 각오를 한 셈이다.
컨테이너 업계의 치킨 게임은 조선업계엔 기회가 될 수 있다. 세계 주요 조선사들이 2027년 인도분까지 수주잔고를 거의 채운 상황에서 해운사가 추가로 발주하면 2028년 이후 계약분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