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별세한 조석래 효성(004800)그룹 명예회장은 회사 기술자들의 연수 장소를 자신의 신혼여행지로 택할 정도로 기술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다. 구창남 전 동양나이론 사장에 따르면 공학도 출신인 조 명예회장은 기술을 이해한 뒤 확신이 들면 사업을 전개하는 스타일이었다.

효성그룹과 송재달 전 동양나이론 부회장에 따르면, 조 명예회장은 1967년 고(故) 송인상 전 재무장관의 딸인 송광자 여사와 결혼하면서 이탈리아 포를리를 신혼여행지로 골랐다. 이유는 이 지역이 당시 동양나이론의 기술자들이 나일론 생산기술 연수를 받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조 명예회장은 이곳에서 직원들과 밤새 기술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1990년 2월 직원들과 함께 HICO 창원공장을 순시하고 있다./효성 제공

조 명예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은 1980년대 합성수지인 폴리프로필렌 사업을 시작할 때도 드러났다. 당시 새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폴리프로필렌의 원료인 나프타는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구하기 어려웠다. 선발 업체들이 나프타를 선점하고 경쟁사도 늘었기 때문이다.

조 명예회장은 수소문 끝에 미국의 한 회사에서 새로운 공법(탈수소화공법)을 통해 나프타 없이 폴리프로필렌의 원료가 되는 프로필렌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액화석유가스(LPG)의 주성분인 프로판에서 프로필렌을 만드는 식이다. 효성그룹은 새 공법을 적용해 폴리프로필렌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조 명예회장은 부하 직원들과 토론을 많이 했고, 그들이 전문지식과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면 받아들였다. 해외 출장 때도 수행원 없이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았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의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철 전 효성물산 전무에 따르면 정 전 전무가 홍콩 주재원으로 일하던 당시 경비실에서 ‘미스터 조’라는 사람이 찾아왔다는 연락이 와서 내려가 보니 조 명예회장이 가방을 들고 혼자 서 있었다고 한다.

조 명예회장은 출장을 다니면서 시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동차 대신 전철을 이용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