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전기차 배터리 폼팩터(형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파우치형, 삼성SDI(006400)는 각형을 주력으로 한다. 후발 주자 SK온은 파우치·각형·원통형 폼팩터를 모두 개발하고 있지만, 경쟁사 수준으로 품질을 끌어올리는 게 관건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생산하면서 이르면 오는 8월 4680(지름 46㎜·높이 80㎜) 원통형 양산을 시작한다. 아직 각형 배터리 생산 계획은 없다.

김동명(왼쪽부터)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최윤호 삼성SDI 사장, 이석희 SK온 사장. /각 사 제공

김제영 LG에너지솔루션 CTO(최고기술책임자)는 “원통형과 파우치형은 상호 보완적 성격을 갖고 있어, 두 폼팩터로 현재와 미래에 사용될 다양한 케미스트리(화학 구성)를 모두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파우치형 배터리는 얇은 알루미늄 필름 형태의 외장재를 사용해 무게는 줄이면서, 단위 공간당 더 높은 에너지밀도를 구현한다. 규격도 정해져 있지 않아 고객사 요청에 맞춰 디자인할 수 있다. 다만 외부 충격에 대한 보호력이 낮다는 게 단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실리콘 음극재를 탑재한 배터리나 전고체 배터리에도 파우치형이 강점을 갖는다고 본다. 우선 실리콘 음극재는 기존 흑연 음극재 대비 리튬 저장 능력을 4∼10배 높이고 충전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충·방전 시 부피 변화가 크다는 문제가 있다.

전고체의 경우 액체 대신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고체끼리 맞닿는 계면(접촉면·interphase)의 저항이 높아진다. 이 경우 이온 전도도와 배터리 수명이 낮아지는 문제가 생긴다. 실리콘 음극재와 전고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배터리셀 전체에 균일한 압력을 가해야 하는데, 파우치형이 폼팩터 중 가장 유리하다고 LG에너지솔루션은 설명한다.

그래픽=정서희

반면 삼성SDI는 각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고용량과 열 안정성을 위해 AL(알루미늄)이 첨가된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양극재를 사용하면서 안전에 더 힘을 주는 모습이다.

각형 배터리는 직육면체 형태의 알루미늄 캔을 외장재로 사용해 외부 충격에 강하다. 또 파우치형과 달리 하나의 배터리셀에 문제가 생겨도, 주변으로 문제가 전이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다만 배터리가 무거워지는 게 단점이다.

삼성SDI는 각형 배터리 공정을 고도화하고 있다. 기존 젠(Gen4) 제품까지는 배터리 소재를 엮어서 돌돌 말아 캔에 넣는 와인딩(Winding) 방식으로 생산했지만, 젠5부터 양극·분리막·음극 등 소재를 계단처럼 층층이 쌓는 ‘스태킹(Stacking)’ 공법을 접목해 에너지 밀도와 내구성이 더 높아졌다.

삼성SDI는 오는 2027년 양산을 예고한 전고체 배터리도 각형 폼팩터를 채택할 전망이다. 회사는 최근 ‘인터배터리 2024′에서 각형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했다.

삼성SDI가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한 전고체 배터리 ASB(All Solid Battery) 모형. /권유정 기자

업계 후발 주자인 SK온은 파우치형 배터리만 만들어 왔으나, 작년부터 각형과 원통형 모두 개발에 나섰다.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3가지 폼팩터 포트폴리오를 모두 갖추는 게 목표다. 파우치형의 경우 지난 2019년 니켈 비중이 90% 수준인 NCM9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며, 지난해 미국 최고 권위 발명상인 ‘2023 에디슨 어워즈’ 내 ‘EV 배터리 향상’ 부문에서 수상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다만 각형과 원통형의 품질을 높이는 게 관건이다.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은 올해 초 CES2024에서 “각형 배터리는 개발이 완료됐고, 원통형도 개발이 상당 수준 진전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