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정제마진이 치솟고 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휘발유‧경유)에서 비용을 뺀 이익으로 정유사의 수익성을 가늠하는 척도다. 업계에서는 지금과 같은 정유 시황 강세가 올해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6일 정유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의 수익성 지표가 되는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2월 둘째 주 배럴(Bbl·1배럴은 약 159리터)당 15.3달러를 기록했다. 통상 정유업계는 Bbl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보는데, 이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정제마진은 올해 1월 첫째 주 Bbl 당 11.9달러로 시작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정제마진은 1분기 평균 7.7달러에서 2분기 0.9달러로 급락했고, 3분기에는 다시 7.5달러로 반등했지만 4분기에는 4.1달러로 다시 하락했다.
정제마진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는 이유는 중국 정부가 수출 쿼터(할당량)를 확대하지 않았고, 올해 글로벌 설비 증설 규모가 지난해보다 줄어 정유제품 공급이 제한된 영향이다.
정유사들은 지난해 4분기에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해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에쓰오일(S-Oil(010950)) 정유 부문은 4분기에 영업손실 2657억원을 기록했고, SK이노베이션(096770) 석유 사업 부문도 1652억원의 적자를 냈다.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는 정유 부문에서 각각 729억원, 191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는 정제마진 강세가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선 중국이 올해 첫 번째 수출 쿼터를 1900만톤(t)으로 발표했는데, 이는 지난해 1차 쿼터(1899만t)와 비슷한 수준이다. 중국은 내수 물량을 먼저 공급하기 위해 수출 물량을 통제하고 있다. 수출 쿼터를 확대하지 않은 것은 내수 경기 부양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이미 아시아와 미국 지역 정유업체는 풀(full)가동 상태이고 중국 수출량이 여전히 낮기 때문에 정제마진 강세는 최소 올해 2분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올해는 공급 확대에 따른 영향도 제한적일 전망이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올해 신규 정유 설비 증설 규모는 104만Bbl로 전년 대비 약 47% 감소하고, PX(파라자일렌) 증설도 160만t으로 전년 대비 83% 줄어든다. 윤활유 증설 규모도 지난해 하루 9000Bbl에서 올해는 -3000Bbl로 오히려 순폐쇄가 예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정유사들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주요 산유국 모임인 오펙플러스(OPEC+)가 감산 기조를 유지하고, 중국도 경기부양책을 펼치며 정제마진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글로벌 재고 수준이 낮고 수요가 안정적이라 아시아 정제마진은 평년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수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위험 요인)다. 지난해부터 홍해 지역에서 예멘 후티 반군이 민간 선박을 공격해 수에즈 운하가 봉쇄됐다. 현재 국내로 들어오는 중동산 원유는 대부분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고, 일부 스팟(spot) 물량만 희망봉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도입된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수급에 큰 영향이 없으나 중동 사태가 악화하면 운송비가 증가할 수 있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