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일본 등을 중심으로 불던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며 ‘K컬처(한국 문화)’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K팝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으로 대변되는 K컬처 뒤에는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부가가치를 높이며, 유통하는 많은 손길이 있다.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K컬처 주역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국내 5대 콘텐츠 배급(유통)사 중 한 곳인 뉴(NEW(160550))의 사내 벤처 뉴아이디는 지난해 말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고 한국무역협회가 주최하는 무역의 날 행사에서 200만달러 수출의 탑을 받았다.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인 ‘패스트(FAST·Free Ad-Supported Streaming TV)’ 시장에 2019년 발 빠르게 뛰어들어 전 세계 1억 가구의 안방에 K콘텐츠를 전파한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패스트는 인터넷에 연결된 스마트TV를 통해 구독료·수신료 없이 미디어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서비스다. 대신 광고를 봐야 한다. OTT나 기존 인터넷TV(IPTV)와의 차이점은 일반 방송처럼 콘텐츠가 편성대로 송출된다는 점이다.

지난 1월 2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뉴아이디 사무실에서 만난 박준경(오른쪽) 대표와 김조한 상무는 수준 높은 K콘텐츠를 오래 유통할 수 있는 통로로 패스트 시장을 공략했다고 밝혔다. /이태경 기자

뉴아이디는 아마존, 로쿠, 파라마운트 글로벌, 컴캐스트, 삼성전자(005930), LG전자(066570), 비지오, 샤오미, TCL 등 글로벌 기업이 운영하는 30여개 주요 글로벌 패스트 플랫폼의 200개 채널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드라마, 영화, 예능, 교양, 키즈, 실시간 뉴스, 스포츠 등 K콘텐츠를 즐기는 시청 시간은 전 세계적으로 월 1000만시간에 이른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뉴아이디 사무실에서 K콘텐츠 유통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박준경 대표와 김조한 상무를 만났다. 박 대표는 “수준 높은 한국 콘텐츠가 내수 위주로 짧게 유통되는 것에 한계를 느껴 왔다. 스마트TV를 기반으로 전 세계 1억 가구 안방으로 전파하는 것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대표, 김 상무와의 일문일답.

─사내벤처 뉴아이디는 어떻게 시작됐나.

(박준경)20년 넘게 영화에 투자하고 배급하는 일을 해 왔다. 우리나라 콘텐츠는 점점 수준이 올라가는 데 내수 시장 의존도가 높고 유통할 수 있는 시간이 굉장히 짧다는 한계를 느꼈다. 될 만한 콘텐츠라도 몇 개 안 되는 플랫폼과 협상해 파는 게 전부였다. 전 세계로 콘텐츠를 유통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중 김조한 상무가 쓴 ‘플랫폼 전쟁’을 읽었다. 글로벌에는 60개가 넘는 플랫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준 높은 우리 콘텐츠를 글로벌에 유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저자를 수소문해서 의기투합하게 됐다.”

─패스트를 통한 콘텐츠 유통은 생소한 영역이었는데.

(박) “창업을 했던 2019년은 미국에서 비싼 케이블방송 가입을 끊고, 넷플릭스 등으로 옮겨가는 ‘코드 커팅(code cutting)’ 열풍이 불기 시작할 때다. 지금처럼 패스트라는 이름은 없었지만 광고 기반의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그러니까 시청자가 아니라 광고주가 돈을 내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것이 스마트TV를 중심으로 본격화되고 있었다. 삼성·LG전자라는 글로벌 TV 제조사가 가까이 있는 만큼 해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뛰어들었다.”

(김조한) “창업한 뒤 2020년 코로나19가 터졌다. 집에 오래 있다 보니 미디어 시청 시간이 갑자기 늘었다. 패스트라는 모델이 본격적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유료 방송 인기가 꺾이면서 유통할 통로를 모색하던 사업자들에게 패스트는 기회였고, 광고주도 모여들었다.”

─패스트를 ‘광고주가 대신 돈 내주는 인터넷TV(IPTV)’로 이해하면 되나.

(김) “예전에는 미디어에 돈을 얼마 안 내도 됐다. 요즘은 플랫폼이 많아지고 가격도 오르고 있어 부담이 크다. 스트리밍과 인플레이션을 합친 ‘스트림플레이션’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그 돈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지 않나. 패스트는 광고주가 이를 대신 내줄 수 있는 모델을 찾은 것이다. 그간 사실상 무료였던 방송을 지탱해 주는 것은 광고였는데, 이 방송이 디지털화한 것이 패스트라고 볼 수 있다.

패스트는 일반 방송과 달리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반 방송은 정해진 시간에 뉴스, 드라마 등 특정 프로그램을 편성하는데 패스트는 시청 패턴에 따라 하루 종일 먹방만 틀어주는 채널도 있다. 그 기반은 시청 데이터다. 시청자(수요)가 만들고, 광고주가 돈 내는 미디어다.”

─일반 방송보다 빠르게 시청자 수요를 파악해 편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박) “콘텐츠를 해외에 팔고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볼 수 있는 건 패스트밖에 없다. 24시간 콘텐츠 시청시간, 지속시간, 시청층 등을 확인하고 실시간으로 데이터 기반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유튜브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알고리즘 기반의 미디어라면, 우리는 대중적으로 수요가 많은 콘텐츠를 빨리 내보낼 수 있다. 스마트한 콘텐츠 유통이 가능하다.”

(김) “데이터를 보면서 어떤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는지 힌트를 얻기도 한다. 국내에선 잘 되더라도 해외에선 냉정한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다. 장르로 보면 언어의 장벽이 낮은, 이를테면 하루 종일 당구 경기를 지켜보는 채널이나 K팝이 인기가 좋다. 남미나 유럽은 더빙으로 현지화 수준을 높여줘야 콘텐츠를 본다. 더빙이 감쪽같이 잘 되면 한국 콘텐츠는 확실히 경쟁력이 있다.”

뉴아이디는 전 세계 30여 주요 패스트 플랫폼에서 운영 중인 200여개의 채널 운영 경험을 기반으로 K콘텐츠를 모아 볼 수 있는 자체 플랫폼 '빈지 코리아'를 내놨다. /뉴아이디 제공

─뉴아이디가 K콘텐츠 글로벌 확산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나.

(박) “2019년에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한국 콘텐츠의 명성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뉴아이디가 들어간 시장이 기존에는 없었던 전 세계 1억 가구의 안방이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현지에서 스마트TV를 켜면 볼 수 있도록 콘텐츠 접근성을 확 키운 것이다. 현재 뉴아이디가 운영하는 200여개 채널이 북미, 남미, 유럽, 호주, 일본, 중동까지 쫙 깔려 있다. K팝을 시작으로 영화, 드라마, 스포츠, 애니메이션, 푸드 등 장르별로 채널이 있다.”

─K콘텐츠 수요는 어느 정도인가.

(김) “북미뿐만 아니라 남미,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유럽에서도 한국 콘텐츠를 좋아하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전반적으론 K팝이나 드라마, 영화가 인기가 많다. 남미에선 푸드 채널이, 호주에서 펫 채널의 수요가 많은 게 특징이다.”

─최근 K콘텐츠 전문 패스트 플랫폼 ‘빈지 코리아’를 북미 시장에 내놨다.

(박) “뉴아이디는 200여개 글로벌 플랫폼 채널로 K콘텐츠 수요를 확인했다. 이를 모아 보고 싶어 하는 수요가 있다고 판단해 빈지 코리아를 만들었다. 채널 단위로 운영하던 것을 플랫폼 단위로 키운 것이다.”

─국내에서도 스마트TV 보급이 늘면서 패스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박) ”패스트가 생소하니 처음에 미디어 측은 ‘보는 사람이 있어야 콘텐츠를 넣지’하고, 시청자는 ‘볼 게 있어야 들어가지’ 하는 게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콘텐츠 사업자가 먼저 뛰어들어 메뉴판을 깔았다. 유료 방송은 또 다른 유통 채널이라는 측면에서, OTT 역시 예비 구독자를 위한 선택지(일부 콘텐츠 무료 제공)를 준다는 측면에서 각각 뛰어들 이유가 명확했다. 국내에서도 이른 시일 내 볼만한 콘텐츠가 많아질 것 같다. 미디어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패스트는 유료 구독 모델과 공존하면서 콘텐츠 가치를 높이고 수명을 늘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

(김) “한국은 트렌드를 늦게 받아들이지만, 그 뒤부터는 진행 속도가 굉장히 빠른 것이 특징이다. 유튜브가 뒤늦게 확산했지만 폭발적으로 몸집을 불려 가는 것이 그 예다. 패스트도 한국 시장에서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