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겼다는 이유로 매년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농산물은 13억톤(t)에 달한다. 이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국가 단위 배출량에 맞먹는다. 못난이는 시장에 팔리더라도 떨이로 처분되는 개념에 가깝다. 어글리어스는 여기에 ‘다품종’, ‘소량’, ‘정기배송’을 붙였다. 마케팅 없이 입소문만으로 출시 2년여 만에 누적 매출 100억원을 넘겼다.”
못난이 농산물은 모양이나 크기가 표준 규격에서 벗어난 농산물을 말한다. 못난이 농산물은 맛과 영양엔 이상이 없지만 겉모습 때문에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버려지곤 한다. 최현주 캐비지 대표는 못난이 농산물이 소비자에게 닿기 위해선 고품질 제품을 소량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21년 설립된 캐비지는 전국 450여개 농가에서 126종의 친환경 못난이 농산물을 직접 공급받아 소포장한 후 정기배송 하는 서비스 ‘어글리어스’를 운영하고 있다. 배송받을 상자 크기(스탠더드, 점보)와 배송 주기(1~3주)를 선택한 뒤, 배송받고 싶지 않은 채소가 무엇인지 등록해 두면 이에 맞게 품목을 구성해 정기배송 한다.
배송받는 주 초에 메신저로 품목 알림이 오는데, 필요에 따라 품목을 바꾸거나 수량을 더하고 뺄 수 있다. 배송받은 농산물의 원산지, 팔리지 못하게 된 사연, 보관법, 보관기간, 레시피(음식 만드는 방법) 등이 적힌 안내 종이도 함께 제공한다.
서비스 출시 3년을 맞은 이달 기준 누적 가입자 수는 20만명을 기록했고, 누적 판매량은 150만㎏을 넘겼다. 재구매율은 88%에 달한다. 가파른 성장세 덕에 지난해 스프링캠프,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신용보증기금, 캡스톤파트너스, 땡스벤처스로부터 프리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 최 대표를 지난달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사옥에서 만났다.
―국내 못난이 농산물 시장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나.
“생산자와 소비자 간 연결이 잘 안됐다. 전체 생산량의 30%가량이 못난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국내 기준) 연간 5조원이다. 특히 친환경 농산물은 약을 치지 않아 못난이가 더 많이 나온다. 생산자는 빨리 처분하려는 마음이 커 한 품목을 10㎏씩 대량으로 판다. 어차피 싸게 파는 것이니 품질을 선별하지 않고 파는 경우도 많다.
소비자는 싼값에 농산물을 사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못난이 농산물 구매를 시도하지만, 개인이 사기엔 양이 너무 많다. 여기다 저품질 제품까지 골라내 버려야 하니 한두 번 사고 포기하게 된다. 못난이 농산물 시장은 ‘떨이 판매’와 개념이 혼동돼 있어 품질 관리가 우선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글리어스의 판매 가격은 대형마트와 비교해 얼마나 저렴한가.
“어글리어스는 무농약, 유기농 등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산물을 주로 다룬다. 같은 품질의 마트 제품과 비교해 약 30% 저렴하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친환경이 아닌 일반 농산물과 비슷한 가격이다.”
―물류는 어떻게 운영하나.
“경기도 화성에 1650㎡(약 500평) 규모의 물류센터가 있다. 매주 월요일~수요일에 전국 산지에서 입고된 농산물을 소분한다. 이후 주문 내역에 따라 포장하고 매주 목요일에 출고한다. 매주 6000상자가량이다.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플랫폼은 소분 포장된 것을 들여와 파는 경우가 많다. 농가는 생산에만 집중하기도 바빠, 소분 포장은 우리가 직접 한다. 향후 이 과정을 자동화해 나갈 계획이다.”
―거래처 확보에 어려움은 없었나.
“현재 450여개 농가로부터 농산물을 받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이전에도 생산자들이 못난이 농산물을 잘 팔아보려고 여러 시도를 했지만, 유통업체로부터 제대로 정산을 받지 못하는 등 실패 경험이 있는 생산자가 많아 초반 거래처 확보가 쉽지 않았다. 지난해부터는 입소문이나 소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져 이전보다는 거래처를 확보하는 일이 수월해졌다.”
―빠르게 성장한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나.
“입소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어글리어스는 마케팅 예산이 전체 예산의 3%에 못 미친다. 이용자 유입 경로를 보면 광고비를 집행한 채널로 유입된 비율은 10%도 채 안 된다. 나머지는 전부 소셜미디어(SNS)에 자발적으로 생성된 후기 등을 보고 유입된 이용자들이다. 어글리어스가 못난이 농산물 시장에 대해 가졌던 문제의식에 공감해 구매로 이어지는 것이다. 감사한 마음에 매년 간담회를 열고 이용자들의 의견을 직접 듣고 있다.”
―경쟁사가 많다. 어글리어스는 무엇이 다른가.
“장보기 시장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 시장은 ‘누가 더 빨리 보내주느냐’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어글리어스는 빠른 배송보다는 이용자의 장보기 고민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이용자들이 어글리어스를 택하는 이유는 이번 주에 어떤 요리를 할지, 그러려면 어떤 채소를 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소해 주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서비스는 앞으로 좀더 개인화하고 고도화해 나갈 예정이다.”
―예를 들면 어떤 서비스가 가능한가.
“레시피 기반의 장보기 기능을 7월에 선보이려고 한다. 예를 들어 카레가 먹고 싶으면 카레에 필요한 재료가 용량별로 담기고 필요에 따라 가감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밀키트와 비슷해 보일 수 있는데, 밀키트는 모든 재료가 손질돼 개별포장된 채로 배송되기 때문에 쓰레기가 많이 나오고 식재료를 개인화할 수 없다는 점이 다르다.”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본격적으로 규모를 키워나갈 예정이다. 지난해까지는 이 시장에서 우리의 사업모델이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면 올해부터는 취급하는 품목을 늘리고 신규 서비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못난이 농산물을 상시 구매할 수 있는 ‘싱싱마켓’ 운영도 더 강화할 예정이다. ”
―역설적으로 ‘못난이 농산물’이라는 말이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농산물 소비자가 못난이를 일반 농산물과 똑같이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소비자들은 채소나 과일을 살 때 자연스럽게 예쁜 것부터 집는다. 이는 유통업체가 예쁘지 않은 농산물을 받지 않게 되는 기제가 됐고, 그 결과 생산자들이 못난이를 수확조차 하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선별 과정이 까다로워질수록 비용이 오르는 단점도 있다.
소비자가 못난이 농산물을 자주 경험하면서 못생겨도 똑같이 맛있고 영양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다. 어글리어스는 단순히 못난이를 잘 파는 곳이 아니라 못난이와 일반 농산물을 선별하는 유통구조를 개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