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국내 극장가가 활기를 잃으면서 영화가 개봉 한 달 만에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 공개되거나 영화관 개봉 없이 OTT로 직행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영화관 관객이 크게 줄자 영화 업계에선 ‘홀드백’ 제도화가 논의되고 있다. 홀드백은 영화가 이전 유통 창구에서 다음 창구로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을 말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손익분기점(BEP)을 넘은 한국 영화는 최근 흥행 중인 ‘서울의 봄’을 포함해 7편에 그친다.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전날 기준 국내 영화관 누적 관객 수는 5189만명이다.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엔 연간 1억1500만명을 넘겼다. 영화관 티켓 매출액은 같은 기간 9700억원에서 5100억원대로 줄었다.

10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 모습. /연합뉴스

제작사와 투자배급사들은 영화관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지자 투자금 회수를 위해 OTT 판매를 택하고 있다. OTT 판매액은 제작비의 5~10% 수준으로 알려졌다. 올해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3위를 차지했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개봉 3개월여 만에 최근 OTT에 공개됐다. ‘비공식작전’, 더 문’ 등은 한 달 만에 OTT에 풀렸고 ‘독전2’, ‘황야’ 등은 극장 개봉 없이 OTT에서 바로 공개됐다. 코로나19 이전엔 영화관→인터넷TV(IPTV)→OTT 순으로 시차를 두고 공급되는 것이 관행이었다.

관객 입장에서는 최신 영화 한 편을 보려고 1만원 안팎의 비용을 내고 영화관에 가기보다, 한두 달 기다린 뒤 월 1~2만원인 OTT로 여러 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경제적이다. 이 때문에 영화관은 관객을 모으기 어려워지고, 경영난 여파로 티켓값을 올리면 관객이 더 빠져나가는 악순환에 빠진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관객들은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대작만 신중히 선택해 본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일이 크게 줄었다”며 “코로나19 이전엔 대작이 개봉하면 같은 기간에 상영 중인 다른 영화도 매출이 함께 느는 효과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런 현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10일 서울시내 한 극장에서 한 시민이 영화 ‘서울의 봄’을 예매하고 있다. /뉴스1

이에 영화업계에선 짧아진 홀드백 기간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화를 영화관에서 상영한 뒤 IPTV나 OTT에서 공개하기까지 최소한의 기간을 정해 법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0월 취임 후 첫 정책 발표에서 ‘자율적인 홀드백 협약’을 언급하기도 했다. 유 장관은 정부 차원에서 홀드백을 정해 이를 준수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홀드백 법제화는 단순히 ‘영화관 살리기’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이익 증진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영화관 입장료 매출액의 3%는 영화발전기금으로 부과된다. 영화발전기금은 독립예술영화와 신인 감독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영화관 매출이 늘수록 이 기금도 늘어나는 구조인데 극장가 침체로 기금이 고갈되고 있다. OTT 플랫폼은 국내 영화계에 이런 지원을 하고 있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 국가는 홀드백을 법제화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넷플릭스와 협상에서 36개월이었던 홀드백을 15개월로 줄이는 대신 넷플릭스가 3년간 매출액의 4%를 프랑스나 유럽 영화에 투자한다는 의무 조항을 만들었다. 일본은 홀드백을 법으로 규정하진 않았지만 6개월~1년의 기간을 관행적으로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