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이른바 안티(Anti·反)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의 ESG 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인 데다, 사회적인 관심도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 기업들이 ESG 리스크(위험요인)에 대한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관측이다.

8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기업들은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본격화하는 탄소배출·화학물질 관련 환경 규제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U는 지난 8월 발효한 배터리 및 폐기물법에 환경 관련 규정 도입을 준비하고 있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지난달부터 시범 시행에 들어갔다.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않는 과불화화합물(PFAS) 관련 규제도 입법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일러스트=유연호

주요국 환경 규제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나 외부 기관에서는 여러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일 기업들을 상대로 ‘국제환경규제 대응 세미나’를 열어 EU의 규제 현황과 추후 전망을 설명하고, 현재 운영 중인 지원책을 소개했다. 금융기관이나 컨설팅업계에서는 기업 수요에 맞춰 환경 규제를 비롯해 ESG 리스크나 컨설팅을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하고 있다.

연초 이후 미국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안티 ESG 기조가 불거지고 있다. 화석연료 산업 비중이 높은 지역의 표심이 두터운 공화당은 그린워싱(친환경적이지 않으면서 친환경처럼 보이게 하는 것) 논란, 저조한 투자 수익률 등을 근거로 ESG 회의론에 힘을 싣고 있다. 극단적인 정치인들의 압력과 맞물린 안티 ESG 기조는 실제 법안 발의나 대선 공약으로까지 반영되고 있다.

하지만 ESG 리스크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력이 향후 브랜드 가치는 물론 수익성, 영업 기반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최근 몇 년 새 환경 오염, 중대 재해 관련 리스크에 노출돼 신용도가 떨어지거나, ESG 평가 등급이 하향되는 기업들의 사례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기 침체, 기업의 투자 및 공시 부담, 지정학적 리스크, 정치적 압력 등으로 ESG를 역행하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면서도 “단기적으로 역풍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ESG 강화 기조는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삼성, LG, SK, 현대차(005380) 등 주요 그룹을 중심으로 기업들은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을 잇달아 선언하고 있다. 더 나아가 넷제로(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제시하고 탄소감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대기업들은 전기차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미래 산업에 적게는 수천억원, 많게는 수조원 단위의 투자 계획을 쏟아냈다.

올해 초 대부분의 국내 주요 기업은 앞으로 ESG의 중요성은 점차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지난 2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 300개 사를 대상으로 ‘2023년 ESG 주요 현안과 정책과제’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절반이 넘는 61.6%는 “올해 경제 상황이 어려워도 ESG 경영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덜 중요해질 것이라고 답한 기업은 전체의 2.4%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