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컴퍼니는 국내 최초로 라이브 커머스(Live Commerce·온라인상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 방송인 ‘라방’을 시작한 기업이다. 서비스 출시 후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창업 4년 만에 연간 거래액이 2억9000만원에서 2100억원으로 증가했다. 그립에서 매달 100만원 이상 구매하는 단골 고객은 월평균 87시간을 시청한다.
김한나 그립컴퍼니 대표는 창업 전 네이버(NAVER(035420)) 자회사 ‘스노우’에서 마케팅 총괄을 담당하며 라이브 커머스 시장에 관심을 가졌다. 스노우는 인기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앱)인 B612와 소다, 라이브 퀴즈쇼 ‘잼라이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운영했는데, 사진에서 영상, 라이브로 소비자들의 관심사가 확장되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 가능성을 체감했다.
김 대표는 국내외 시장조사를 거쳐 2018년 8월 회사를 차렸고, 이듬해 라이브커머스 ‘그립’을 출시했다. 그립은 현장에 직접 찾아가야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을 방송으로 소개하며 고객을 끌어모았다. 두부로 만들어 글루텐(불용성 단백질)이 없는 ‘두부빵’과 고급 재료로 만든 수제비누 등 그립에서 소개한 제품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소비자들을 위해 진행한 다양한 이벤트도 눈길을 끌었다. 방송을 보면서 즉석에서 참여하는 게임이나 선착순 할인 판매, 최대 90%까지 적용되는 무작위 할인판매 등을 진행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창업 4년 만에 200만을 넘어섰고, 누적 시청 수는 8000만회를 넘겼다. 김한나 그립컴퍼니 대표를 경기도 판교 본사에서 만나봤다.
─초기에는 방송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텐데.
“소비자들이 영상을 보면서 결제를 하는 행위를 재미있게 느끼도록 다양한 이벤트를 했다. 처음에는 연예인 유상무 사인이 들어간 벽돌 98개와 고가의 에어팟 2개를 무작위로 섞어 제품 1개당 3500원에 파는 행사를 했는데, 에어팟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몇백명에 불과했던 사용자가 몇천명으로 늘었다.
‘켜면 완판(물건을 남김없이 다 파는 것)’이라는 행사도 해봤다. 다 팔릴 때까지 방송을 끄지 않는 거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돌아다니면서 제품을 홍보하고, 그립으로 결제해 달라고 했다. 어떤 제품은 완판되기까지 4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모든 과정을 생방송으로 지켜본 소비자들이 안쓰러워서 구입해줬다. 다양한 행사를 통해 2019년 2월 출시 후 한동안 늘지 않았던 MAU가 벽돌을 판매했던 11월부터 급상승했다. 지금은 250만이다.
─판매자는 어떻게 모집했나.
“판매자를 모으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인물)를 찾아가 함께 물건을 팔아보자고 설득했는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그래서 SNS에서 인기가 많은 상품을 직접 만드는 소상공인들을 찾아다니며 입점을 제안했다. 2019년 2월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총 49명의 판매자를 모았다.
지금은 판매자가 늘면서 직업군이 다양해졌다.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을 경매에 부치기도 하고, 어부가 당일 잡은 오징어를 직접 보여주고 판매하기도 한다. 현재 총 2만명이 판매자로 등록돼 있고, 하루 평균 1300회가 넘는 방송이 진행된다.”
─기업 협찬도 들어왔다고 들었다.
“방송이 입소문을 타니까 그립에서 제품을 홍보하려는 브랜드들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하림(136480)이나 매일유업(267980) 같은 식품회사들이 연락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다양한 기업들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고 있다. 작년에는 미술품 투자 플랫폼인 ‘테사에셋’과 업무협약(MOU)을 맺어 유명 작가들의 굿즈(기획상품)를 소개하고 있다. 올해 4월에는 KG모빌리티의 인기 차종인 토레스 2대, 렉스턴 스포츠 칸 2대를 튜닝한 차를 경매로 팔기도 했다.”
─수익구조는 어떻게 되나.
“판매자들에게 플랫폼 사용 수수료를 얻는다. 사용료를 내면 결제나 방송 등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판매자 중에서 제품은 팔고 싶은데 방송에 직접 출연하는 것은 꺼리는 분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방송 홍보를 전문으로 하는 ‘그리퍼’들을 연결해 주면서 매칭 수수료를 받는다. 기업 브랜드 홍보비도 별도로 받는다.
최근에는 그립 플랫폼을 사용해 방송을 할 수 있도록 기업들에 SaaS(클라우드 기반의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구독료를 받고 있다. 컬리나 SSG, 신세계백화점, 올리브영, 홈플러스 등 유통 기업들이나 경동나비엔(009450), 락앤락(115390) 같은 기업들이 그립 클라우드를 사용한다. 이베이재팬 등 일본 회사들도 그립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 ‘네고왕’의 제작사인 달라스튜디오와 협업하고 있는데.
“네고왕은 프랜차이즈 기업을 상대로 상품 가격을 네고(negotiation·협상)하는 과정을 그린 프로그램이다. 달라스튜디오는 제품을 바로 구입할 수 있는 플랫폼이, 그립컴퍼니는 고도화된 콘텐츠 전문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네고왕에서 소개된 상품을 그립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연계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지금은 탁재훈의 압박면접(스튜디오 룰루랄라), 청소광 브라이언(M드로메다)을 만든 제작사와도 협업하고 있다.”
─그간의 경영실적은 어땠나.
“2019년 첫해 연간 거래액이 2억9000만원이었다. 그런데 2020년에 240억원으로 증가했고, 2021년에는 800억원을 넘어섰다. 작년은 2100억원이었다. 올해 상반기는 1500억원을 기록했다. 연말까지 3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투자는 총 1915억원을 유치했다. 2020년까지 한국투자파트너스와 네오플럭스, TBT 등으로부터 115억원을 유치했고, 이듬해 카카오(035720)가 1800억원을 투자했다.”
─향후 목표는.
“단기적으로는 콘텐츠 제작사와의 협업을 늘려 미디어커머스(Media Commerce·미디어 콘텐츠를 활용한 전자상거래) 시장을 확실히 점유하고 싶다. 해외 진출도 추진한다. 작년 9월 미국 시장에 진출했는데 여력이 되면 동남아나 남미 시장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향후 통번역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되면 한국에 있는 콘텐츠를 미국과 일본에서도 볼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