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를 이끄는 중견·중소기업의 2·3세 경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은 선대로부터 배운 승부 근성과 해외 경험을 발판 삼아 글로벌 무대로 뻗어나간다. 1세대 기업인을 뛰어넘기 위해 2·3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들어본다. [편집자주]

“내년에 사우디아라비아부터 미국·캐나다(북미), 동남아시아 등으로 직접 나가 뛰어다니려고 합니다. 5년 안에 수출 1억달러(약 1300억원), 매출 5000억원을 각각 올리는 게 목표입니다.”

지난 23일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에 있는 스마트홈 기업 코맥스(036690) 본사에서 만난 변우석(52) 대표는 “‘메이드인코리아(Made In Korea·한국산)’ 딱지를 붙인 K-테크(기술)가 해외에선 경쟁력이 충분하다”면서 “창업 초기인 1973년부터 50년째 수출을 해오고 있기 때문에 해외 네트워크·노하우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변우석 대표가 코맥스 최신 기술의 총체인 'AI 스마트 미러'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성남=김지호 기자

1968년 창업자 변봉덕(84) 회장이 ‘중앙전자공업’이란 이름으로 설립한 코맥스는 올해로 창립 55주년을 맞았다. 인터폰을 시작으로 화면에서 방문객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비디오폰, 전화로 난방 스위치·가스 밸브를 조작할 수 있는 홈오토메이션(자동화) 시스템, 현관 보안·실내 공기 질 관리·커뮤니티 서비스(스마트홈)를 한 번에 제공하는 월패드·인공지능(AI) 스마트 미러(거울)까지 코맥스가 생산·판매하는 제품군은 300여종에 이른다.

코맥스는 전 세계 120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유럽, 중동, 러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에선 글로벌 기업들에 맞서 시장 점유율 3~4위를 기록하고 있다. 코맥스는 지난해 매출 1560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수출액은 285억원으로 매출의 20%가량이다.

서울대 성악과, 이탈리아 밀라노베르디음악원 거쳐 세계 최고 오페라단인 ‘라 스칼라’에서 정단원으로 활동하며 오페라 가수 데뷔를 준비하던 변 대표는 2006년 8월 회사에 합류했다. 해외 마케팅 이사, 부사장을 거쳐 2018년 변 회장과 공동대표에 올랐다. 2021년부터는 단독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변 대표는 “2006년 1월 아버지께서 100년 기업을 만들어야 하는데 리더십을 계승할 후임이 보이지 않는다. 경영에 뜻이 없다면 회사를 팔겠다고 했다”며 “고민 끝에 10년간의 이탈리아 생활을 정리하게 됐다”고 했다.

코맥스의 주요 제품 라인업. 월패드, 도어락 등 300여종의 제품을 120여개국에 판매하고 있다./코맥스 유튜브 캡처

변 대표는 회사 합류 초기 제품 공부 등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2008년 터진 이른바 ‘키코(KIKO) 사태’였다. 은행 권유로 환율 관련 파생상품인 키코에 투자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회사는 환율 급등으로 수백억원대 평가손실을 내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변 대표는 “당시 해외 영업 부문장으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전 세계를 다니면서 신제품을 출시하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며 “전사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던 것이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도 전방 부동산 시장 침체, 반도체·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회사가 위기를 겪고 있다고 했다. 최근 3년간 회사 매출은 성장했지만, 2021년 122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고 2022년엔 51억원의 적자를 이어갔다.

변 대표는 “이를 계기로 제품 재설계, 쓸데없는 기능 축소 등을 통한 원가 혁신에 나서고 있다”면서 “올해는 흑자 전환, 내년부터는 의미 있는 영업이익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캐나다, 태국, 베트남 등에서 수주 성과를 꽤 올렸기 때문에 5년 내 수출 1억달러, 매출 5000억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분기보고서를 보면 9월 말 회사 수주잔고는 3100억원을 웃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1145억달러(약 149조원)였던 글로벌 스마트홈 시장 규모는 2027년엔 2125억달러(약 227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래픽=정서희

변 대표는 2017년 코맥스벤처러스라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설립하고 현재까지 30여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이들 스타트업은 코맥스의 스마트홈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월패드에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을 올려 입주민의 생활 편의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클라우드 사업에서 협업하는 ‘동고비소프트’나 전구 갈기 등 생활 도움 서비스를 약 5000~5만원에 연결해 주는 ‘애니맨’, 스마트팜 설비를 개발·보급하는 ‘그린’ 등이 있다.

그는 “시장 점유율 1위였지만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몰락했던 코닥의 사례를 공부하면서 상생 혁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 CVC 설립이었다”며 “지난 5년간 제품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부품, 원자재 등의 목록을 구성하는 것부터 영업망, 사후 관리(AS) 등에서 많은 노하우를 공유하며 투자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데 집중했다. 앞으로는 회수(상장·매각)를 통해 재투자를 위한 재원 확보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 대표는 "내가 바뀌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면서 "일의 전문가인 직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혁신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 하는 경영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성남=김지호 기자

변 대표는 2021년 단독 대표에 오르면서 ‘나부터 바꿔야 남도 바꿀 수 있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먼저 15㎏을 감량했다. 임직원들을 질책하고 의견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던 것에서 경청하는 것으로 태도도 바꿨다. 변 대표는 “예전에는 내 실력이 곧 회사의 실력이라고 착각했는데, 임직원이 잘해야 회사가 잘 된다는 점을 배웠다”면서 “이들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잘해주는 경영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코맥스는 ‘1인 1혁신 기획안 제도’를 운영 중이다. 코맥스 직원이라면 누구나 연초에 혁신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1년간 이를 실행해 연말에 포상하는 제도다. 내년 1월부터는 직원들이 보다 수평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임원, 팀장을 제외한 모든 직급(대리·과장·차장 등)을 없애는 새로운 인사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변 대표는 “과거엔 직급별로 참여하는 회의가 달랐지만, 요즘엔 프로젝트마다 희망자가 다 들어올 수 있다”며 “일에 있어서 더 전문가인 직원들의 목소리에 경청하고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단 걸 오늘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