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뉴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하리아나주(州) 구루그람(Gurugram·옛 구르가온)의 밀레니엄시티센터역사. 이곳에는 현지 유망 스타트업이 다수 입주한 최신 공유오피스 더서클워크(The Circle Work)가 있다.
지난달 31일 방문한 더서클워크 내 한국계 핀테크 기업 밸런스히어로의 대형 사무실에는 현지 개발자 약 100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구글과 페이팔 출신의 고액 연봉자도 여럿 있다고 한다.
밸런스히어로는 지난 2019년 인도 소액대출 서비스 시장에 진출해 지난해 매출 694억원, 영업이익 107억원을 달성했다. 대출액 기준으로 현지 소액대출 서비스 중 3위다. 2016년 출시한 애플리케이션(앱) 트루밸런스의 다운로드 건수는 8000만회를 넘었다. 지난 8월 한국 투자사들로부터 추가 투자를 받을 당시 산정된 회사 가치는 약 2200억원이다.
창업 초기 선불제 휴대전화의 잔액 확인 서비스에서 출발해 현재는 인도 중앙은행(RBI)으로부터 디지털 결제와 대출 허가(NBFC)를 얻어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제도권 밖에 있어 신용등급이 없는 저소득층에 15만~20만원 정도의 금액을 3~6개월간 빌려준다. 월 평균 이자율은 5~6% 수준이나 현지 금리 수준이 높아 수요는 항상 넘친다. 연체율은 7% 수준이다.
밸런스히어로는 휴대전화 단문메시지(SMS) 등 1만2000개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독자 기술로 신용도를 측정한다. 인도 내 개발팀을 이끄는 주재원 신재혁 밸런스히어로 리더는 “RBI가 규제하지 않는 데이터는 다 쓰려고 한다. 높은 연체율을 감수하고 금융 소외계층에 대출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인도 당국이 우리를 나쁘게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도는 필수 인프라 부족 문제를 정보통신 기술과 민간의 자원을 활용해 돌파하려고 해 민간 기업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덕분에 핀테크, 디지털헬스, 물류 등 산업군에서 창업이 활발하다.
더서클워크에 입주한 디지털헬스 분야의 한국 소셜벤처기업 랩에스디(LabSD)도 이 같은 정책을 활용해 현지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랩에스디는 방글라데시와 베트남에서 실명 예방사업을 시작했고, 인도에서 내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준비 중이다.
랩에스디는 자사 장비 아이라이크(Eyelike)를 스마트폰 카메라에 부착해 간단한 검안기를 만들고 이를 통해 동공을 통해 보이는 안구의 안쪽면인 안저 영상을 촬영하면 이 영상을 인공지능(AI) 기반으로 분석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당뇨성 망막병증, 녹내장, 황반변성 등의 조짐을 찾아내면 현지 의료기관으로 이들을 연결해 준다.
김윤승 대표, 윤상철 세브란스병원 교수 등 랩에스디의 주주들은 전세계 안과 의사들과 국제실명방기구(IAPB) 활동 과정에서 돈독한 네트워크를 쌓은 관계를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중고 스마트폰의 업사이클링을 고민하던 삼성전자(005930)의 지원은 검안기 제작과 초기 고객 확보에 큰 도움이 됐다.
김 대표는 “인도 정부가 디지털헬스에 적극적이라는 느낌을 받고 있다. 인도 안과병원들은 고유한 지역 하부조직인 ‘비전센터’와 영상통화 방식으로 초보적 형태의 원격의료를 수행하고 있다”며 “인도는 인구가 많고 유병률이 높지만, 의료진의 수준이 높아 랩에스디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도 고소득층을 주요 시장으로 설정한 한국 스타트업도 같은 곳에 입주해 있다. 노매드헐(NomadHer)은 혼자 여행하는 여성을 위한 서비스 앱을 운영한다. 노매드헐은 ‘여성들이 여행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평가가 많은 인도에서 현지 고소득층 여성 여행자를 주요 고객으로 삼았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이 늘면서 시장은 커지고 있다. 실제 구루그람 거리에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PwC, KPMG 등 세계적 기업의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노매드헐은 자체 개발한 신원 인증 알고리즘과 글로벌 커뮤니티 앱을 바탕으로 여성 동행 찾기나 여성 맞춤 여행 정보, 여행 캠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노매드헐 접속량은 북미와 서유럽이 중심이었으나 인도 접속량이 늘면서 전 세계 유입량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됐다.
노매드헐은 내년 말 인도 남서부의 대표적 휴양지 고아에 여행 캠프 서비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김효정 노매드헐 대표는 구루그람에서 인도 사업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이곳에는 노매드헐의 고객을 상징하는 여성들이 많이 살고 있다.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높아 한 해 2~3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인도 전문가’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