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수소 생산업체인 현대제철(004020)의 생산설비가 고장 나면서 수송용 수소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관련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지만, 회사는 해당 설비가 12월 중순 정도 수리가 완료될 것으로 보고 있어 공급 차질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24일 오전 10시 경기도 구리시 하이넷구리토평수소충전소에는 현대차(005380) 넥쏘 3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 대기 차량이 6대까지 늘어나 충전을 위한 대기 시간이 약 1시간으로 늘었다. 차 한 대당 충전 시간은 15분 정도다. 전날과 지난주 토요일에는 수소 공급이 되지 않아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24일 오전 하이넷구리토평수소충전소에 현대차 넥쏘 차량이 충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윤예원 기자

이곳에서 만난 김모(45)씨는 “안내 앱(애플리케이션)에서 대기 차량이 5대라고 떴다. (오늘은) 시간이 있으니 괜찮은데, 원래 이렇게까지 기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직장인 A씨는 “오늘은 30분 정도 기다렸는데, 최근에 2시간까지 대기해 봤다. 주변에 수소차는 절대 추천 못 한다”고 했다.

구리토평수소충전소 담당자는 “본사에서도 다음날 운영을 할 수 있을지를 전날 마감 직전에야 알려줄 수 있는 상황인 것 같다. 지난번에는 밤 10시에 공지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수소차 충전소 운영사 하이넷(수소에너지네트워크)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기준으로 경기 지역 수소충전소 27곳 중 9곳이 수소 재고 부족 등으로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영업을 중단한 충전소는 전날 12곳에서 3곳 줄었지만, 관계자들은 언제 다시 수소 공급이 중단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의 경우 수소충전소 10곳 중 4곳이 영업을 안 하고 있다. 국내 충전소 194곳 중 23곳은 영업시간을 3~5시간 정도 단축했다.

수소가 부족하다 보니 수소 잔량이 있는 인근 수소 충전소로 차량이 몰리고 있다. 서울 광진구에 있는 H광진무빙스테이션은 이동형 수소 충전소로 차 한 대당 50%씩만 충전할 수 있어 평소에는 손님이 별로 없다. 그러나 전날에는 충전 차량이 평소 대비 2배 이상 몰렸다. 이곳 관계자는 “원래는 하루 평균 6~7대 정도 오는데, 어제는 16대를 받았다. 절반이라도 충전하려는 이용자들이 줄지어 기다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2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수소충전소에 수소 공급 문제로 인한 운영시간 단축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뉴스1

현대제철이 생산하는 수송용 수소는 연간 약 3500톤(t)으로 수도권 등 중부지역 수요량의 20∼30%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달 초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 수소 생산설비 세 개 중 두 개가 고장 나 수도권과 중부지역 수소충전소를 중심으로 수소 부족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압축기에 문제가 생겼는데, 수입품을 사용하고 있어 당장 수리가 어렵다. 현대제철 제철소에서 사용해야 하는 수소도 있어 생산량의 100%를 충전소에 공급할 수 없다.

현대제철에 따르면 고장난 설비 두 개 중 하나는 예비용이었다. 현재는 평소 대비 50%를 생산하고 있다. 회사는 12월 중순 정도에 수리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한다.

앞서 2020년부터 문재인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따라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086280) 등은 한국가스공사(036460)와 함께 수소충전소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현대제철은 2021년 환경부가 공모를 통해 선정한 상용차용(버스·트럭 등) 수소차 충전소 구축 사업자 중 한 곳으로 뽑혀 건설 비용의 70%를 지원받기도 했다.

현대제철은 올해 4월 26일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국책 과제’, ‘탄소 중립 경영’ 등을 내세우며 수소 관련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수소 인프라(기반시설) 투자에 대한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만여대였던 수소차는 올해 10월 기준 약 3만3700대로 늘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소 사업은 탄소 중립이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행하는 것이다. 정부의 추가적인 지원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수소 대란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오후 현대제철, 롯데케미칼(011170), SK E&S 등 수소 생산업체와 수소에너지네트워크, 한국가스기술공사 등과 함께 수소 수급 상황 점검 회의를 열었다. 산업부는 정상 가동 중인 수소 생산 설비에서의 여유 물량을 수급이 불안정한 충전소에 공급될 수 있도록 공급사에 협조를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