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를 이끄는 중견·중소기업의 2·3세 경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은 선대로부터 배운 승부 근성과 해외 경험을 발판 삼아 글로벌 무대로 뻗어나간다. 1세대 기업인을 뛰어넘기 위해 2·3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들어본다. [편집자주]

“글로벌 기업에서 배운 건, 같은 일만 반복하면 결국 정체된다는 것이다. 흥진정밀은 국내 1위 업체지만 정체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조직문화도 바꾸고 해외사업을 시작해 매출을 두 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흥진정밀은 50년 차 건축 시험기 전문기업이다. 아스팔트, 콘크리트 등 건축자재의 강도를 측정하는 장비를 만든다. 국내 시장 점유율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1위 업체다. 흥진정밀은 2014년 중소기업중앙회 선정 ‘명문장수기업’으로 꼽혔고, 2021년엔 고용노동부 ‘청년 친화 강소기업’에 선정됐다.

정태련 흥진정밀 대표. 2014년 중소기업중앙회 명문장수기업으로 꼽힌 흥진정밀은 꾸준히 외형을 늘리고 조직문화를 개선해 고용노동부가 꼽은 청년 친화 강소기업으로 꼽혔다. /김포=이은영 기자

정태련 흥진정밀 대표는 삼성SDS(삼성에스디에스(018260))와 씨티뱅크 일본지사에서 13년 간 직장생활을 하다 2012년 흥진정밀에 입사해 2019년 대표가 됐다. 정 대표의 과거 본업은 ‘업무 효율화’였다. 삼성SDS에서는 전사자원관리(ERP) 엔지니어였고, 씨티뱅크에서는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일을 했다. 2007년 씨티은행 일본지사에서 비대면 계좌 개설을 처음 기획하기도 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정 대표는 일본 씨티은행 부사장을 지냈다.

그러던 중 2012년 귀국을 택했다. 흥진정밀 창업자이자 대표인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하고 회사 사정마저 여의치 않아졌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흥진정밀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정 대표는 “기술자였던 아버지처럼 모든 디테일을 직접 챙기기보단, 경영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봤다”며 “조직을 효율화해 성장시키는 것이 전공이었으니, 흥진정밀에서도 회사를 키울 새로운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정태련(왼쪽에서 두 번째) 흥진정밀 대표가 도로교통박람회에서 해외 구매자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흥진정밀 제공

정 대표는 해외 문부터 두드렸다. 국내외 전시회에 다니며 영업 네트워크를 쌓았다. 그 덕에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시험기를 들여와 재가공해 판매하는 등 해외사업을 시작했다. 정부의 동남아시아 건축지원사업에 참여해 라오스, 캄보디아 등 건설 현장에도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도로 표면을 촬영하면 인공지능(AI)이 아스팔트 균열 등 도로 안전 정보를 인식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로드 AI(ROAD AI)’의 아시아 총판도 맡고 있다. 로드AI는 유럽 판매 1위 소프트웨어다. 흥진정밀이 싱가포르 정부에 납품하고 있다. 2012년까지만 해도 흥진정밀의 해외 매출액은 0원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전체 매출액의 30%를 차지한다.

정 대표는 외형 확대에 이어 조직문화도 바꿨다. 외국계 기업에서 주로 진행하는 타운홀미팅을 도입해 모든 직원에게 직접 회사의 경영 상황과 주요 안건을 공유한다. 잔업도 없앴다. 직원들은 오전 7시 30분~8시 30분에 출근해 4시 30분~5시 30분에 퇴근한다.

정 대표는 “대부분의 중소 제조기업이 잔업을 당연시한다. 잔업을 해야만 급여를 제대로 받아가는 구조인 곳도 많다”며 “이를 탈피했더니 생산성이 올라 매출이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