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100마일(160㎞) 비행할 때마다 500파운드(226㎏)의 탄소가 배출됩니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3%가 비행기에서 나오고 2050년에는 그 비중이 30%가 될 전망입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선 전기 비행기가 빠르게 상용화되고 있지만 아시아에선 움직임이 더딥니다. 올해 첫 도입을 계기로 향후 전기 비행기 전문 항공사가 되려고 합니다.”

정찬영 토프모빌리티 대표는 “전기 비행기 도입을 1년 넘게 준비한 끝에 가격 등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마쳤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방 공항과도 협력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 대표는 제주항공(089590) 승무원 출신으로 항공기 조종사 면허를 취득한 뒤 국내 UAM(Urban Air Mobility·도심 항공 이동수단) 분야에서 일했다.

정찬영 토프모빌리티 대표. 승무원에서 조종사를 거쳐 국내 UAM 산업에 몸담다 전기 비행기 산업에 뛰어들었다. /토프모빌리티 제공

토프모빌리티는 올 연말 유럽 항공청의 인증을 받은 2인승 전기 비행기를 아시아 최초로 도입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순차적으로 4인승, 9인승 전기 비행기를 들여온다. 이를 위해 세계 유일 상용 전기 비행기 제조사 피피스트렐(Pipistrel)과 최근 계약을 맺었다. 2인승 전기 비행기부터 국내 시범 비행을 거친 뒤 내년부터 관광 비행을 시작한다.

김재천 AK플라자 대표(전 제주항공 부사장) 등 전문가들이 토프모빌리티 고문으로 사업을 돕고 있다. 토프모빌리티는 여러 액셀러레이터(AC)와 투자 유치도 논의 중이다. 아래는 정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전기 비행기 산업 현황이 궁금하다.

“전기 비행기는 2008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 2020년 6월에 세계 최초로 전기 비행기가 유럽 항공청 인증을 받았다. 지금은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프랑스 등 유럽에서 전기 비행기가 상용화돼 있다. 유럽은 이미 10년 전부터 친환경 산업 육성의 일환으로 전기 비행기 산업을 키워왔다. 오래전부터 먼저 준비해 왔기 때문에 지금도 전기 비행기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미국도 최근 전기 비행기를 도입해 여러 주에서 비행기 조종사 훈련용으로 쓰고 있다. 미국은 전기 비행기를 경량 항공기로 활성화하기 위해 인증 체계를 간소화하려는 작업이 한창이다. 기존 경량 항공기는 600㎏까지였는데, 전기 비행기까지 포함시키기 위해 그 무게를 1360㎏으로 늘렸다.”

―전기 비행기는 어떤 장점이 있나.

“친환경적인 것이 가장 크다. 일반 비행기는 100마일(160㎞)에 500파운드(226㎏)의 탄소를 배출한다. 자동차, 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은 다 전기로 바뀌고 있다. 비행기도 친환경화가 필요하다. 프랑스는 기차 노선이 있는 2시간 30분 이내의 국내 노선은 내연기관 비행을 올해 5월부로 금지했다. 이 때문에 현지 항공사들 사이에선 이 노선을 전기 비행기로 바꾸려는 수요가 있다.

또 전기 비행기는 전기 자동차처럼 소음과 진동이 없다. 일반 비행기를 탔을 때 들리는 소음은 대부분 엔진 소음이다. 이 소음이 없으니 탑승감도 훨씬 개선될 것이다. 유가 영향을 받지 않으니 탑승권 가격도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연말부터 순차적으로 들여올 2~9인승 전기 비행기는 1인당 10만원가량으로 책정됐다. 90만원이면 9인승 전기 비행기를 빌릴 수 있다.”

토프모빌리티가 연말에 도입하는 2인승 전기 비행기. 오른쪽은 이동식 충전기. 50분 충전해 50분간 비행할 수 있다. /토프모빌리티 제공

―배터리가 걱정되는데.

“비행기에는 여러 개의 배터리가 분산돼 장착돼 있다. 혹시 배터리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한 번에 전원이 꺼져 사고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일각에선 연료 무게와 배터리 무게를 비교하면서 비행의 효율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연료는 비행할수록 닳으니 비행기 무게가 가벼워져 비행 효율이 오르는데 배터리는 늘 무겁다는 것이다.

비행기는 처음 이륙할 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고 이륙 후 하늘에서 순항할 땐 바람을 타고 간다. 또 비행기 전체 무게에 비하면 연료 무게는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그 무게가 줄어든다고 해서 효율에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본다.

전기 배터리 기술은 계속 좋아지고 있어, 전기 비행기의 출력과 비행 가능 거리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얼마나 빨리 개선되느냐의 문제다. 지금은 2인승 기준으로 50분 동안 완충하면 50분 비행이 가능하다.”

―전기 비행기의 국내 도입 과정은 어땠나.

“인증은 거의 마무리가 됐다. 이미 유럽 항공청의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한국에 들여왔을 때 간단한 시범 비행만 마치면 상용화가 가능하다. 문제는 충전기다. 충전기는 설치식과 이동식이 있다. 이동식은 전기차 충전기보다 작아 공항에 가져다 놓으면 충전할 수 있다. 그런데 설치식은 아직 관련 규제가 국내에 없다. 국토부와 규제 샌드박스 등을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대기업들이 하는 UAM 사업과는 무엇이 다른가.

“UAM은 도심에서 대중교통을 대신할 수단으로 주목받는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또 UAM은 프로펠러가 달려 수직으로 이·착륙한다. 반면 전기 비행기는 도심이 아닌 공항과 공항 사이를 오가는 교통수단이라 활주로가 필요하다. UAM과 달리 기존 항공법을 적용받기 때문에 비행기 도입만 승인받으면 바로 비행이 가능하다는 게 큰 장점이다. UAM과 전기 비행기는 함께 성장해야 하는 분야다. 서로가 채울 수 없는 부분을 메워주는 역할을 할 거라고 본다.”

토프모빌리티가 아시아 최초로 국내에 도입하는 2인승 전기 비행기. 미국과 유럽에선 상용화되어 있다. /토프모빌리티 제공

―대한항공 등 항공사가 경쟁사가 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전기 비행기는 지금 기술로는 32인승까지 개발이 가능하다. 항공사는 50인승 이하는 소형 항공사, 그 이상은 일반 항공사로 분류돼 관련 인허가가 다르다. 토프모빌리티는 관광용 비행과 국내 단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하려고 한다. 일반 항공사는 국제선 여객을 주된 시장으로 하고 있다.”

―전기 비행기 시장에 홀로 뛰어들었다. 어떻게 시장을 개척할 예정인가.

“먼저 내년 상반기에 선착순 고객 100명을 대상으로 관광 비행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1인당 10만원가량의 비용으로 약 30분간 2인승 전기 비행기를 타고 해안가를 비행하는 상품이다.

내년 하반기에 4인승에 이어 9인승 전기 비행기까지 국내에 도입하는 것이 목표다. 본격적인 국내 단거리 비행은 울릉도, 남해안, 제주도 쪽을 고려하고 있다. 지자체와도 활발히 협의 중이다. 이후 전기 비행기 개발 상황에 따라 취항지를 늘려갈 예정이다. 2028년이 되면 30인승 이상의 전기 비행기가 나올 예정이고, 2030년이 되면 800㎞ 이상 떨어진 중국 청도, 일본 오사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취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