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아트에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프로덕션(제작) 기술이 필요하다.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전문적으로 하는 곳들은 많지만, 모든 설루션을 전부 제공하는 곳은 국내에 ‘어나더선데이’가 유일하다. 작가들이 손쉽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도구까지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어나더선데이는 미디어아트 제작에 필요한 전문 기술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이다. 미디어아트는 영상부터 컴퓨터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와 기술을 활용한 예술을 말한다. 어나더선데이는 최장우 대표가 창업해 연세대 미래캠퍼스 디지털아트학과 동문 다섯 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작은 팀이지만 전문 기술을 내재화해 제작 품질을 높이면서도 비용은 줄였다.

탄탄한 기술력 덕분에 어나더선데이는 창업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나이키, 로레알 등 글로벌 기업의 국내 광고 캠페인에 참여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2023 예술분야 초기창업 지원 사업’에도 선정됐다. 이달 25일까지는 어나더선데이만의 기술력과 비전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서 연다.

최장우 대표는 “보통 예술 작품이라고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다고 생각하는데, 미디어아트는 전문적인 엔지니어링 기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작가들이 작품을 제작할 때 기술의 제약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존재의 이유”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신설동 전시회장에서 최 대표를 만났다.

최장우 어나더선데이 대표. 미디어 아트 작가를 꿈꾸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을 익힌 최 대표는 어나더선데이 창업 1년 만에 글로벌 기업의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업계 주목을 받았다. /이은영 기자

―공학이 아닌 예술을 전공했다.

“처음엔 미디어아트 작가가 되고 싶었다. 화가가 붓이나 물감에 대해 모르면 그림을 그리는 데 한계가 있는 것처럼 미디어아트 작가도 기술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술을 모르면 외부 제작 업체와 타협할 수밖에 없다. 컴퓨터 서버, 프로그램 개발, 모터 등을 머리 싸매고 공부했다. 정밀업을 하시는 아버지 영향도 많이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금속과 기계에 노출돼 지내다 보니 모터나 엔진을 공부하는 것이 남들보다는 수월했다. 아버지에게 조언도 자주 구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한 대형 미디어아트 팀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곳에서 현실을 본 것 같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팀원들이 자기 삶 없이 전력 질주하고, 은행 대출까지 받는 모습을 봤다. 미디어아트 작가를 꿈꿨지만,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내가 가진 기술력으로 그들을 돕는 것이 더 적성에 맞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프로젝트를 마치자마자 법인을 세웠다.”

어나더선데이가 참여해 제작한 나이키와 피스마이너스원의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 /어나더선데이 제공

―어나더선데이는 동종 업계 기업과 무엇이 다른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전부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업체는 기술적인 제약 때문에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어나더선데이는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기술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특히 자체 기술로 키네틱 아트(kinetic art·움직이는 예술 작품) 작업이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단순히 움직이는 제품을 가져와 조립해서 동작시키는 개념이 아니다. 설계도를 그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작품이 정확한 속도로 떨림 없이 특정 각도를 그리며 움직이게끔 해야 하기 때문에 모터뿐만 아니라 전기, 프로그래밍까지 잘 알아야 한다. 보통의 업체들은 시제품을 사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한 하드웨어 전문 업체는 관객이 문자 메시지로 작업물을 받아볼 수 있도록 했는데 서버 관리를 직접 하지 않아 개인정보 관련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다. A 관객에게 가야 할 개인정보 관련 문자 메시지가 B 관객에게 가는 등 오류가 발생해 소송으로 번질 뻔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어나더선데이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를 소개해 달라.

“창업 초기 랑콤의 신제품 출시 기념 팝업 전시를 맡은 적이 있다. 앰플 물방울을 형상화한 76개의 크리스털 공이 배열을 그리며 수직으로 움직이는 작품이었다. 키네틱 구조 설계부터 제작, 프로그래밍까지 전체 과정을 총괄했다. 키네틱 구조는 하나하나 직접 제작했다. 시제품 중에는 이렇게 촘촘하게 놓을 수 있는 제품이 없다. 보통 도르래 원리를 이용해 와이어 줄을 감았다 풀었다 하면서 수직 운동을 하는데, 와이어 줄이 감겼다 풀리면서 발생하는 오차와 진동을 없애기 위해 우리만의 기술력을 적용했다.

'랑콤'의 신제품 출시 기념 팝업 전시. 어나더선데이가 키네틱 아트 제작을 맡았다. 76개의 크리스털 공이 촘촘하게 배열을 그리며 움직이도록 직접 소프트웨어를 설계하고 하드웨어를 제작했다. /어나더선데이 제공

나이키와는 태권도를 주제로 인터랙션(둘 이상의 대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콘텐츠를 제작했다. 아트 월(Art Wall) 앞에 서면 자신이 태권도 경기장 위에 선 것 같은 모습의 3차원(3D) 형상이 화면에 뜬다. 단순히 사람의 움직임을 그림자처럼 똑같이 보여주는 게 아니라 특수 효과를 입혀 액션 게임처럼 역동적인 이미지를 더했다.

이런 미디어아트는 그간 2D 형식이 많았다. 카메라에 비춘 사람 형상을 실시간으로 추적해 효과를 입힌 뒤 송출하다 보니 데이터 처리량이 많기 때문이다. 처리량이 많으면 프레임이 끊겨 부자연스럽게 그려질 수 있다. 그래서 데이터를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 화려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릴 수 있도록 했다.”

―어나더선데이가 미디어아트 업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나.

“어나더선데이는 공장 가공 이외에는 전부 직접 제작해 품질은 높이고 비용은 낮출 수 있다. 이런 기조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된다면 이전처럼 비용을 부풀리긴 어려울 거라고 본다.”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서비스와 관련해서는 전문 기술 설루션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작가를 위한 미디어아트 도구를 제작하는 것이 목표다. 예를 들어 전문 지식이 없는 작가도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전자기기 기판을 개발하려고 한다. 조명을 제어하는 전자 기판을 개발하는데, 전 세계 제품을 다 갖다 붙여도 작동할 수 있도록 호환성과 확장성을 개선하는 식이다. 궁극적으로는 작품을 만들 때 기술의 벽을 넘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