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를 주로 하던 SFA(에스에프에이(056190))가 2차전지(배터리)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종합 장비업체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최근에는 2차전지 전극 공정 핵심 장비 업체인 CIS(씨아이에스(222080))를 1723억원에 인수했다.

디와이홀딩스의 전신은 동양엘리베이터다. 동양엘리베이터 창립자 원종목 회장의 차남인 원진 SFA 부회장은 경복고,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8년부터 동양엘리베이터 부사장으로 경영 수업을 받았다. 2003년 동양엘리베이터의 엘리베이터 사업부를 독일 티센크루프에 매각한 뒤 사명을 디와이홀딩스로 변경하면서 원 부회장이 전면에 등장했다. 원 부회장이 만 30세였을 때였다. 2008년에는 SFA 인수로 장비 사업에 뛰어들었다.

원 부회장은 SFA의 최대주주인 디와이홀딩스 지분을 100% 들고 있다.

그래픽=정서희

SFA는 1998년 삼성항공(현 한화비전)의 자동화 사업부에서 분사해 설립됐다. 외환위기의 여파로 삼성그룹사의 설비투자가 급감하자 독자 생존에 나선 것이다. SFA는 물류 자동화의 기반이 되는 기구설계·제어 등의 기술을 바탕으로 브라운관(CRT)용 디스플레이 설비로 먹거리를 모색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각지에서 CRT 막바지 투자가 활발하던 시기라 SFA가 성장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고, 2000년대 중반부터는 CRT 다음 세대인 액정표시장치(LCD)에 대한 기술까지 확보하면서 디스플레이 장비업체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SFA는 종업원 지주회사로 시작해 절대적인 주주가 없어 디와이홀딩스가 수월하게 인수할 수 있었다.

원 부회장은 경복고 선배인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과의 인연으로 2010년 회사 지분 10.15%를 삼성전자에 넘겼다. 삼성은 단숨에 2대 주주가 됐다. 2012년 삼성전자에서 삼성디스플레이가 물적 분할되면서 투자 지분은 디스플레이로 이전됐다. SFA 입장에서는 핵심 고객사를 확실하게 끌어오고,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다음 세대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장비 기술 개발이 필요했기 때문에 윈윈(win-win)할 수 있는 선택지였다.

그래픽=손민균

하지만 디스플레이 사업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다 보니 전방 설비투자 동향·업황에 따라 실적이나 주가가 들쑥날쑥했다.

이에 SFA는 자동화 기술을 기반으로 2차전지, 반도체, 유통 등 비(非) 디스플레이 사업으로도 발을 뻗기 시작했고 2021년에 디스플레이 매출 비중이 처음으로 50% 아래로 내려갔다. 작년에는 디스플레이 이외 매출이 전체의 84%를 차지했다. 이 중 2차전지 부문은 48%에 달했다.

원 부회장은 성장성이 큰 2차전지에 힘을 싣고 있다. 올해 3월 2차전지 전극 공정 장비회사 CIS를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2차전지는 전극 공정, 조립 공정, 화성(활성화) 공정 등을 거치는데, 전극 공정은 양극·음극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분류된다. 그간 SFA는 조립·화성 공정만 담당했으나 전극 공정 내 코팅·건조 기술 역량까지 갖추면서 일괄 수주가 가능해졌다.

대구시 동구에 있는 CIS 제2공장 전경. /CIS

사업 다각화에 힘입어 수주액도 늘고 있다. SFA는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총 1조1090억원을 수주했다. 이는 작년 연간 수주액(1조1207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연결 종속회사로 편입된 CIS의 수주잔고도 6월말 기준 7800억원이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SFA는 올해 1조9000억원대의 매출(연결 기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작년보다 13% 늘어난 수치다. 내년에는 2조3000억원대로 ‘연매출 2조원’ 시대를 열 전망이다.

그래픽=정서희

하지만 2차전지를 성장동력으로 내세우는 회사답지 않게 주가는 신통치 않다. 이달 15일까지 1년 새 SFA 주가는 20% 넘게 떨어졌다. 2차전지 관련주들이 증시를 주도했던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반도체 업황 악화에 따라 연결 자회사인 SFA반도체의 수익성이 악화됐고 2대 주주인 삼성디스플레이가 지분을 정리 중인 것은 약점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6월 지분의 약 절반을 매각해 5.85%만 들고 있는데, 이마저도 곧 정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형순 SFA IR 파트장은 “프리미엄 장비를 출시해 수익성을 개선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최근 수주잔고가 늘면서 올해 4분기부터는 매출 성장이 기대돼 2대주주 지분 매각에 따른 우려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 부회장도 물밑에서 반전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선 원 부회장이 최근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과 수차례 회동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SK하이닉스(000660)나 SK온 등에 장비를 공급하는 등의 전략적 협업 논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