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를 이끄는 중견·중소기업의 2·3세 경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은 선대로부터 배운 승부 근성과 해외 경험을 발판 삼아 글로벌 무대로 뻗어나간다. 1세대 기업인을 뛰어넘기 위해 2·3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들어본다. [편집자주]

지난달 30일 부산역 광장 앞에 있는 삼진어묵 매장. 1층에는 고로케부터 어묵바, 고추튀김어묵까지 다양한 상품이 베이커리처럼 진열돼 있었다. 쟁반에 원하는 상품을 골라 담은 손님들은 카페처럼 테이블과 소파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 친구나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묵을 먹었다.

부산 동구 삼진식품 본사에서 만난 박용준(40) 대표는 길거리에서 많이 먹던 어묵을 빵처럼 먹을 수 있도록 베이커리형 매장을 선보였다. 다양한 상품을 만들면서 고급화에도 힘쓰고 있다.

박용준 삼진식품 대표./삼진식품 제공

삼진식품은 현존하는 어묵 제조회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1950년 고(故) 박재덕 창업주가 부산시 영도구 봉래시장 입구의 판잣집을 개조해 어묵 공장을 세웠고, 1953년 7월 삼진식품 간판을 달고 정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박재덕 창업주의 아들인 박종수 회장은 생산·포장 설비를 구축했고, 브랜드를 ‘부산어묵’으로 바꾸면서 매출 20억원 규모의 기업으로 키웠다. 박 회장은 박 대표의 아버지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성장세가 둔화하기 시작했다. 도매상과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요가 정체된 상태에서 환공어묵, 영진어묵 등 경쟁 업체가 증가했다. 소비자와의 접점이 넓은 백화점·마트 등은 대기업이 장악해 유통망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묵산업 탄생 60주년을 맞은 2010년대에는 어묵 산업과 삼진식품 모두 정체기를 지나고 있었다.

박 대표가 가업에 뛰어든건 이 시점이었다. 당초 그는 가업승계에 뜻이 없었다. 뉴욕시립대 회계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회계사의 길을 걷고 있었고, 2011년엔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 8월 몸이 편찮으신 부모님의 부름을 받고 귀국을 결정했다. 당시 박 대표의 나이는 29세였다. 그는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내가 아니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생산, 영업, 유통 전반에 뛰어들었다. 초반 6개월은 사업을 배우는 데 주력했다. 생산된 어묵을 일일이 박스에 담았고, 식자재 마트를 찾아다니며 영업에 나섰다. 어묵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상품을 나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업 간 거래(B2B)에 치중된 매출 구조의 문제점을 체감했다.

삼진어묵 부산역광장점./삼진식품 제공
삼진어묵 부산역광장점에 진열된 어묵들./삼진식품 제공

반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디자이너를 고용해 브랜드명을 삼진어묵으로 바꿨고, 제품 포장지도 새로 만들었다. 이후 온라인 오픈마켓 등으로 판로를 확대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현재는 백화점과 홈쇼핑은 물론 PC방까지 납품할 정도로 유통채널이 촘촘해졌다.

베이커리형 어묵 매장을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박 대표는 직접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어묵을 빵처럼 파는 ‘어묵 베이커리’를 고안했다. 2012년 영도 공장에서 1년간 시범 운영을 거쳤고, 2013년 말 어묵크로켓과 단호박어묵, 치즈말이어묵 등 갓 튀긴 어묵을 파는 매장을 열었다. 이곳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현재 국내 19곳, 해외 4곳(인도네시아)으로 확대됐다.

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영도 본점을 2층으로 만들어 작은 서점처럼 꾸며놨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부모님께서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예 없애버린 적도 있다”면서 “(새로운 시도를)우려하는 직원들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선택을 인정해 줬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박 대표의 선택은 옳았다. 2013년 83억원이던 삼진식품의 매출은 지난해 830억원으로 10배 늘었다. 지난해 매출은 유통(B2B, 할인매장 등)이 61%, 매장 24%, 온라인이 14% 등이었다. 매출을 늘리면서 B2B에 의존하던 구조를 바꾸는 데도 성공한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삼진식품은 내년 중 어묵 장인을 키워내는 마이스터 제도를 업계 최초로 도입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일본 가마보코(어묵) 협회에서 어묵 제조 방식을 전수하기 위해 어육가공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어묵 산업을 튼튼하게 바꾸려면 지금처럼 저가 제품 위주의 시장에서 벗어나 고급 식품도 소비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어묵이라는 기존 제품에 새로운 가치를 입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부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공개(IPO)도 추진한다. 경영진의 지배력이 약화되지만, 주주를 늘려 객관적인 관점에서 회사의 방향성을 수립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과 함께 절차를 밟고 있다. 삼진식품은 지난 2021년에도 외부에서 150억을 유치한 바 있다.

박 대표는 “미국에서 유학하던 내가 외부의 관점으로 회사를 경영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면서 “산업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신선한 경험이 들어와야 한다. 삼진식품이 새로운 항해를 떠날 수 있다면 내 지분이 사라져도 나아갈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