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영국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가스보일러의 신규 설치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국내 보일러 업계는 친환경 에너지인 수소를 사용한 보일러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삼성, LG 등 대기업은 가스가 필요 없는 히트펌프 제품으로 틈새 공략에 나섰다.

15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지난 8일 독일 의회는 내년 1월부터 발효되는 ‘보일러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신규 택지개발 지역에 들어서는 건물에는 신재생에너지를 최소 65% 사용하는 보일러만 설치할 수 있다. 기존 건물이나 일반 택지에 짓는 건물의 경우 대도시는 2026년부터, 소도시는 2028년부터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 기계실에 설치된 보일러 난방시설./뉴스1

독일 정부는 가스보일러를 이미 설치한 가구도 신재생에너지 보일러를 사용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친환경 시스템 설치비용의 30%를 보조금 형태로 돌려주고, 2028년 전까지 보일러를 교체하면 20%를 더 지급하기로 했다. 2045년부터는 화석연료(석탄·석유·천연가스)를 사용한 보일러를 전면 금지할 방침이다.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올해부터 신규 가스보일러 설치를 금지했고, 영국은 2025년부터 신축 건물에 가스·석유보일러 설치를 단계적으로 금지한다. 덴마크도 2029년까지 모든 건물이 지역난방이나 히트펌프로 가동되도록 할 방침이다.

유럽은 나아가 수소보일러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수소 가스를 사용하면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미 구축된 도시가스 배관을 사용할 수 있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2025년까지 도시가스 배관을 통해 수소 20%를 기존 액화천연가스(LNG)에 섞어 공급하는 인프라 구축을 마칠 예정이다. 독일도 2021년 10월부터 천연가스 배관에 단계적으로 수소를 20%까지 혼입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수출 비중이 작지 않은 국내 보일러 업계에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경동나비엔(009450)은 2017년 이후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돌파했으며, 작년에는 해외 매출 비중이 66.60%에 달한다. 같은 해 말에는 업계 최초로 ‘5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출 비중이 10% 안팎인 귀뚜라미와 린나이코리아도 북미와 유럽 등에 법인을 세우며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경동나비엔이 올해 6월 영국에서 열린 ‘인스톨러 쇼’에서 참여해 100% 수소를 사용하는 콘덴싱 보일러를 선보였다. /경동나비엔 제공

각 업체는 수소보일러 개발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영국에서 판매 중인 콘덴싱 보일러를 대상으로 ‘수소 레디 인증’을 받았다. 이는 수소가 20% 혼입된 가스에서도 정상 작동하는 제품이라는 뜻이다. 올해 6월 영국의 한 전시회에서 100% 수소를 사용하는 콘덴싱 보일러를 선보이기도 했다.

귀뚜라미보일러도 작년 하반기부터 수소 전용 콘덴싱 보일러 관련 연구개발에 나섰다. 현재 보일러 회사 연구업체들과 함께 도시가스 배관에 수소를 섞어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기존 콘덴싱 가스보일러의 경우 수소 혼입 비율에 따른 성능과 안전성 테스트 등을 거쳤다.

린나이코리아는 작년 5월 가정용 수소 전용 콘덴싱 보일러를 개발한 일본 본사와 협업해 연구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본사는 올해 5월에도 호주 가스공급업체 AGIG와 협력해 상품화를 위해 실증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2030년쯤 호주와 뉴질랜드, 영국 등에서 수소보일러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소보일러 전환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보일러 개발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기존 도시가스 배관에 수소를 혼입해도 문제가 없도록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수소보일러 확대에 앞서 도시가스 배관으로 수소를 공급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작년부터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 히트펌프 'EHS' 제품이 집에 적용된 이미지. /삼성전자 제공

이에 수소보일러 전환기 동안 히트펌프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2015년 기준 4%에 불과했던 주거용 히트펌프 사용 비율이 오는 2050년 34%를 넘을 전망이다. 히트펌프는 가열된 따뜻한 공기나 냉각된 찬 공기를 건물 내부 등에서 전달·순환시키는 장비다. 난방용 히트펌프의 경우 기존 가스보일러 대비 에너지 효율이 3~5배 높다.

히트펌프 분야는 보일러 업계보다는 주로 삼성과 LG(003550) 등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005930)는 지난 3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냉·난방공조 전시회에서 친환경적인 자연 냉매인 ‘R290′을 적용한 제품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R290 자연 냉매는 오존층 파괴지수(ODP)가 0, 지구온난화지수(GWP)가 3으로 기존 냉매보다 훨씬 환경친화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같은 장소에서 LG전자(066570)도 R290을 적용한 실내외기 일체형 히트펌프 신제품을 공개했다.

업계 관계자는 “탄소중립이 세계적인 흐름이 되면서 보일러 제품에도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보일러 업계에서도 관련 연구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