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계의 먹거리 중 하나인 유조선(탱커) 시장이 ‘엔화 약세’라는 복병을 만났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일본 조선소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자 한국 조선소의 단골이 일본 업체를 찾는 일도 생겼다.

HD한국조선해양이 건조한 수에즈막스(Suezmax) 급 원유 운반선. / HD현대

25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그리스 선사 키클라데스는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2척을 최근 일본마린유나이티드(JMU)에 발주했다. 키클라데스는 그동안 주로 HD한국조선해양(009540)에 선박 제작을 의뢰했다.

JMU는 키클라데스에 척당 8200만달러(약 1090억원) 이하의 선가를 제시하고, 이르면 2025년까지 배를 완성해 인도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조선소보다 납기는 빠른데 선가는 오히려 5% 정도 저렴하다. 앞서 삼성중공업(010140)은 지난 6월 초 오세아니아 지역 선주로부터 2026년 납기의 원유운반선을 척당 8610만달러에 수주한 바 있다.

일본 조선소의 가격 경쟁력은 엔화 가치 약세 영향이 크다. 미국 달러화와 비교한 엔화 가치는 2020년 말보다 약 30% 하락했다.

한국 조선업계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다음으로 대규모 수주가 가능한 선종으로 유조선을 꼽아왔다. 최근 수년간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늘었으나 유조선 수는 크게 늘지 않았다.

글로벌 환경 규제나 국제 정치 상황도 유조선 신조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초대형원유운반선(VLCC)과 수에즈막스 탱커는 글로벌 선대 총량 대비 조선업계 수주잔고 비율이 각각 1%, 3%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내년까지 유조선 계약을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가 글로벌 조선업계 수주전의 관전 요소였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중국의 저가 공세를 우려했으나 일본 조선사까지 엔화 약세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일본마린유나이티드(JMU)가 건조한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 J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