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유가가 배럴(bbl)당 90달러를 눈앞에 두는 등 상승 흐름을 타고 있지만, 정유사들의 속내는 복잡한 모습이다. 유가와 맞물려 상승하는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을 뺀 값) 덕분에 하반기에 양호한 실적이 기대되지만, 휘발유·경유 등 서민연료 가격이 급격히 올라가면 지난해처럼 횡재세(Windfall Profit Tax·초과이득세) 논의가 재발하거나 실적 잔치를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18일 정유 4사, 대한석유협회, 한국석유유통협회, 한국주유소협회, 한국석유공사, 농협경제지주, 한국도로공사와 함께 석유 시장 점검회의를 열고 국제 유가 상승분을 초과한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서민 부담을 고려해 유류세 인하 조치를 추가로 연장한 만큼 정유업계도 유가 안정 노력에 동참해 달라는 것이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가격은 8월 둘째 주에 배럴당 87.93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한 달 전보다 7.94달러 오른 수치이며, 지난 4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제유가는 7월 둘째 주 80달러를 돌파한 뒤 셋째 주(80.57달러), 넷째 주(83.97달러), 8월 첫째 주(85.77달러) 등 상승 흐름을 타고 있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사우디의 감산 의지가 강하며,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유가 강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지난 7월부터 하루 100만배럴 규모를 감산하고 있는데, 이를 9월까지 지속하고 필요한 경우 더 연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900만배럴로 최근 2년 사이 가장 적은 수준이다.
유가 상승과 함께 정유사들의 수익 지표가 되는 정제마진도 오르고 있다. 2분기 평균 배럴당 4.03달러에 머물렀던 정제마진은 8월 첫째·둘째 주 잇달아 10달러를 돌파하며 손익분기점(4~5달러)을 크게 웃돌았다. 정제마진이 10달러를 넘어선 것은 지난 1월 넷째 주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2분기 정제마진 약세로 전년 대비 실적이 줄어든 정유사들 입장에서는 국제유가 상승이 반갑지만, 상황을 마냥 반기기는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처럼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는 등 너무 높아지면 부담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유사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유 가격이 급등하며 상반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휘발유·경유 등 서민 연료 가격이 크게 오르자 횡재세를 물려야 한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올해 초에는 정유사가 직원들에게 기본급의 100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096770), S-Oil(010950),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은 각각 10억~150억원을 출연해 에너지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금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서민 연료비는 계속 상승 중이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지난달 리터(ℓ)당 1500원대에서 지속 상승해 전날 1733원을 기록했다. 서울 지역만 놓고 보면 1814원에 달한다. 전날 경유 가격도 1599원으로, 1달 전보다 200원 넘게 올랐다.
정부는 이달 말 종료 예정이었던 유류세 인하 조치를 10월까지 연장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현재 정부는 휘발유 25%, 경유와 LPG는 37%씩 유류세를 인하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연말까지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OPEC+(오펙플러스) 산유국의 감산 규모가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원유 재고는 올해 3분기에 하루 220만배럴가량 줄고, 4분기에 하루 120만배럴 감소해 유가를 더욱 끌어올릴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가 상승은 실적에 도움이 되지만, 너무 오르면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정유사들 입장에서는 국제유가가 70~80달러 사이를 유지하면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적당한 수준의 정제마진이 유지될 때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