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업이 탄소포집·저장(CCS)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화석 연료를 사용할 때 대기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CO₂)를 모은 뒤, 영구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는 일이다. 아직 국내 기업 대부분이 해외에서 탄소 저장소를 확보 중이지만, 동해가스전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추가 저장소 개발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은 핵심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CCUS는 CCU(탄소포집·활용)와 CCS(탄소포집·저장)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기본 전제는 탄소 포집이다. 공장이나 발전소 굴뚝에서 나오는 배기가스에서 탄소를 걸러내 수송이 가능한 액체 상태로 가공한 뒤 이를 활용(Utilization)하거나 저장(Storage)하는 것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는 한국석유공사, SK(034730)·포스코 그룹 등과 동해 울릉분지에서 CCS 사업을 위한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울릉분지는 지난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합동연구에서 국내 CCS 유망지역으로 분류된 지역이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울릉분지 탄소 저장 용량은 약 1억9300만톤(t)으로 추정됐다. 이는 2021년 기준 포스코 연간 탄소배출량(7850만t)의 2.5배에 달하는 규모다.
울릉분지는 석유공사와 현대건설(000720)이 추진하는 ‘동해가스전 활용 CCS 실증사업’이 진행될 곳이기도 하다. 국내 첫 CCS 프로젝트로, 사업 기간은 2025년부터 2030년까지로 예정됐다. 울산에서 남동쪽으로 58㎞ 떨어진 지점에 있는 동해가스전은 국내 유일의 석유자원 생산시설로 지난 2021년 말 가스 생산이 멈췄다. 매년 120만톤(t) 규모의 탄소를 주입해 저장한다는 계획이다.
몇 년 전부터 석유공사는 CCS 사업 준비를 해왔다. 지난 2020년 7월 전담조직인 CCS사업팀을 신설하고, 전문 인력을 보강했다. 동해가스전을 시작으로 국내에 제2, 3의 탄소 저장소를 발굴한다는 방침이다. 석유공사는 지난 6월 발표한 중장기 대륙붕 개발 계획인 ‘광개토 프로젝트’를 통해 2031년까지 연간 400만t 규모의 탄소 저장소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동안 국내 주요 에너지 기업은 탄소 저장소로 활용할 가스전 등이 부족해 해외에서 사업을 추진했다. SK E&S는 호주, 동티모르에서 탄소 저장소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액화 이산화탄소를 호주 다윈 지역에 하역한 다음 동티모르 해상 가스전에 연간 300만t 규모를 영구 저장한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096770)에서 분사한 석유 개발 기업 SK어스온은 올해 초 영국의 CCS 전문기업 아줄리와 손잡고 호주,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CCS 프로젝트 개발에 나섰다.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은 지난해부터 호주에서 해상 가스전을 활용한 CCS 사업의 경제성을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인수한 호주 세넥스에너지와 CCS 사업화를 위한 기술평가와 경제성 분석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삼성, SK, 롯데, GS(078930) 등 국내 주요 그룹 에너지 자회사들이 공동으로 CCS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주관하고 삼성중공업(010140), SK에너지, SK어스온, 롯데케미칼(011170), GS에너지, 말레이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페트로나스가 참여 중인데 지난 11일 석유공사, ㈜한화, 에어리퀴드코리아, 쉘(Shell) 등이 추가로 합류했다.
글로벌CCS연구소에 따르면 글로벌 탄소포집·저장 시장은 앞으로 매년 30% 이상 성장해 2050년에는 탄소포집량이 76억t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9월 기준 운영 및 개발 중인 글로벌 CCS 프로젝트를 통해 저장할 수 있는 탄소 규모는 전년대비 44% 증가한 연 2억4400만t 수준이다. 상업 운영되는 프로젝트 개수도 2021년 29개에서 2030년에는 135개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가 중장기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만큼 국내에서도 CCS 프로젝트는 점차 활발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부는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CCUS를 포함하고, 주요 정책과제로 CCUS법 제정, CCUS 기술 확보 및 상용화를 꼽았다. 최근 CCUS를 활용한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는 2030년 기준 1030만t에서 1120만t으로 상향 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