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해외 우려 집단(Foreign Entity of Concern·FEOC)’ 지침 결과에 국내 배터리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FEOC는 거래 불가 정부·기업 조건 등을 담은 것으로 ‘IRA 블랙리스트’로 평가받는다. 특히 중국에 대한 FEOC의 배제 수위에 따라 중국 기업의 북미 진출은 물론, 국내 기업이 추진하는 중국 기업과의 합작 사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22일 재계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IRA FEOC 지침과 관련해 대상 국가와 기업의 선정 기준을 심의하고 있다. IRA는 미국에서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부품은 2024년부터, 핵심광물은 2025년부터 FEOC에서 조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배터리 핵심광물은 원재료를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50% 이상 채굴·가공해야 하고 배터리 부품은 미국에서 제조해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국내 기업이 IRA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FEOC에 포함된 국가나 기업과 거래를 하면 안 된다. IRA가 미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해 마련된 것인 만큼 미국은 중국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만약 중국에 대한 배제 수위가 강해지면 중국 기업과 설립한 국내 합작사도 우려 외국 집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LG화학(051910)은 중국 화유코발트와 SK온·에코프로머티리얼즈은 거린메이와 각각 합작사를 설립하고 전구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POSCO홀딩스(005490)와 포스코퓨처엠(003670)도 지난달 글로벌 1위 전구체 전문기업인 중국의 CNGR과 이차전지용 니켈 및 전구체 생산에 협력하는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했다.
배터리 업계의 중국 의존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지난해 코발트와 망간의 중국 의존도는 각각 75.8%, 99.2%에 달했다. 리튬의 중국 의존도도 81.7%다. 당장 중국을 대신할 국가를 찾기도 쉽지 않다. 세계 최대 니켈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와 포스코그룹이 리튬 광산을 보유한 아르헨티나는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아 ‘핵심광물 인정국’ 지위가 필요하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만약 FEOC에서 중국이 완전히 배제되면 국내 기업이 공급망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새만금과 포항 등에서 추진되는 전구체 합작사는 사업을 철회하거나 다른 파트너사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FEOC의 수위를 어느 정도로 할지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최근 존 케리 대통령기후특사, 재닛 옐런 재무장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잇달아 중국을 찾아 화해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수위가 낮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중국이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를 발표하는 등 여전한 기 싸움을 하고 있다.
FEOC의 불확실성은 국내 배터리 기업의 최대 리스크(위험 요인)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한 대기업은 양극재 공장 신규 투자 결정을 FEOC 지침 발표 이후로 미뤄둔 상태다. 한국 정부는 미국에 “해외 우려 집단 지침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며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핵심광물 인정국(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을 확대해달라는 요구도 담겼다.
일각에서는 내년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 역시 IRA의 최대 고비라는 평가도 나온다.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IRA 폐지’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내년 연말쯤이면 이미 국내 업체들의 미국 공장 건설이 상당히 진행돼 투자 철회도 어려울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원재료 등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구조”라며 “중국을 100% 배제하기보다는 지분율, 추가 투자 제한 등의 기준을 만들어 중국의 참여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FEOC를 설계할 것으로 예상된다. 궁극적으로는 국내 기업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노력을 펼쳐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