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국제해사기구(IMO) 회의 때마다 자율운항 선박 국제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일본이 지난해 IMO 회의에 맞춰 자국의 자율운항 선박 기술과 관련 규제를 소개하는 행사를 열자, 한국도 최근 열린 IMO 회의에서 자율운항 기술 현황을 소개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19일 조선해운업계에 따르면 IMO는 지난달 총회 기간에 해사안전위원회(MSC·Maritime Safety Committee) 107차 회의를 열고 2025년까지 채택하기로 한 자율운항 선박(MASS·Maritime Autonomous Surface Ships)의 운항 규제와 관련해 논의했다. IMO 해사안전위원회는 선박의 설계와 건조, 설비 등에 대한 국제 기준을 심의하고 제·개정하는 회의체다.
IMO 해사안전위원회는 자율운항 선박 규제를 만들고 있다. 일단 내년까지 강제성 없는 합의를 만들어 시행에 들어간 뒤, 이를 바탕으로 2025년까지 규제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2028년 발효될 예정이다. IMO는 각국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실무그룹 회의를 오는 10월에 다시 열고 논의를 이어간다. 새로 만들어지는 규제는 자율운항 선박의 국제 표준으로 이어지고 조선해운 산업의 주도권을 쥔 국가와 기업을 결정하게 될 전망이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조선·해운·기자재 분야 대기업 등 50개 기관을 규합해 대응하고 있다. 일본의 ‘메구리(MEGURI) 2040 무인운항선 프로젝트’는 한국보다 빠르게 시작됐고, 넓은 범위의 실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IMO와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한 설득 작업도 한발 빠르게 진행했다. 지난해 일본 연안 해운에 적용된 자율운항 경험을 IMO에서 공유했다.
일본은 기존 선박에 필수적으로 설치되던 통합항해장비(INS·Integrated Navigation System) 관련 국제 규제 등에 자율운항을 위한 알고리즘을 덧붙이자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INS 분야 기자재 시장의 주도권을 일본 기업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자율운항에 필요한 인지·판단·제어를 위한 알고리즘을 중심으로 규제와 표준을 만들어 가자는 입장이다. 한국 정부는 이를 위해 지난달 30일 IMO와 함께 자율운항 선박 심포지엄을 열고 관련국 설득 작업을 시작했다. 기술, 산업, 항만 등 3개 세션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HD현대(267250), 삼성중공업(010140) 등 한국 대형 조선사와 항만공사, 한국선급 관계자가 총출동했다. 지난해 경쟁적으로 진행된 한국 조선업계의 자율운항 실증 경험 등이 이 자리에서 소개됐다.
이번 심포지엄에 연사로 나섰던 임도형 아비커스 대표는 “자율운항 규제의 제정 방향에 사업의 성패가 달렸다”면서 “이번 런던 IMO 총회 때 자율운항 선박 규제 관련 행사에 참석한 일본 관계자는 60명이 넘는 반면, 정부 차원의 대규모 행사를 연 한국은 40명에 그쳤다. 더 역량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