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이 로켓처럼 날았다.’
전 세계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미친 질주를 두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MS가 투자한 오픈AI가 채팅형 인공지능(AI) ‘챗GPT’를 공개한 것은 서곡에 불과했다. 검색엔진 ‘빙(Bing)’부터 사무용 프로그램 ‘오피스’에 이르기까지 AI를 탑재한 MS 서비스가 쏟아져 나왔다. 챗GPT만 보고도 기겁해 ‘코드 레드(code red)’를 발령했던 구글로서는 MS의 연이은 제품 발표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MS 주가는 12% 이상 상승해 MS 시가총액은 2조달러(약 2617조원)가 넘는다. 물론 MS의 AI 제국 건설 과정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최근 5년간 MS가 내린 의사 결정 과정을 추적했다.
MS의 의사 결정 과정
1│오픈AI와 만남→클라우드 대대적 업그레이드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가 샘 올트먼 오픈AI CEO를 만난 것은 2018년 선 밸리 콘퍼런스였다. 미국 투자은행(IB) 앨런앤드컴퍼니가 1983년부터 주최해 온 선 밸리 콘퍼런스는 정·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억만장자들의 사교 클럽’이라고 불린다.
오픈AI는 거대 언어 모델(LLM)을 기반으로 인공일반지능(AGI) 모델을 개발 중이었는데, 천문학적인 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델라 CEO는 오픈AI 기술이 MS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er)’ 확장에 도움 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의 주도하에 MS는 오픈AI의 자회사인 오픈AI LP에 처음엔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나중엔 100억달러(약 13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지난 4년 동안 MS가 공들여 한 작업 중 하나가 오픈AI의 거대 언어 모델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애저의 인프라(네트워크, 서버 등)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었다. 이제 애저에서 API(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 호출만으로 오픈AI의 GPT-3.5, GPT-4, 코텍스, 달리2, 챗GPT 등을 쓸 수 있다. API 호출 서비스는 이미 3월 13일부터 유료화됐다.
MS코리아의 한 고위 임원은 “나델라 CEO는 클라우드 서비스 확장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면서 “애저에 AI 기능을 붙이면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나델라의 판단은 옳았다. 애저의 오픈AI 기술을 쓰겠다는 고객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2│빌 게이츠 등에게 비밀 시연→검색 고도화
오픈AI가 GPT-4를 대중에게 공개한 것은 지난 3월이었다. 하지만 오픈AI는 지난해 여름 MS 수뇌부가 참석한 가운데 GPT-4 시연 행사를 열었다. 이 비밀 시연 행사에서 빌 게이츠 MS 창업자는 GPT-4의 성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케빈 스콧 MS 최고기술책임자(CTO)는 GPT-4를 이용해 MS의 검색엔진 빙을 고도화하기로 한다. 세계 검색 시장 점유율 2~3%에 불과한 MS가 시장 점유율 90%를 자랑하는 구글의 심장부를 정면으로 겨누기로 한 것이다. MS는 빙과 GPT의 추론 기능을 결합한 새 검색엔진 기술을 ‘프로메테우스’로 명명했다. 인간에게 몰래 불을 전해준 그리스 신 프로메테우스처럼 빙이 인간에게 새 능력을 선사해줄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새 빙은 AI 채팅 기능이 추가돼 사용자가 질문하면 대화하듯 답변을 내놓는다. 최근 국내에서도 빙 사용자가 일곱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3│챗GPT 공개→모든 제품에 AI 탑재
사실 챗GPT는 오픈AI의 다음 언어 모델 GPT-4를 고도화하기 위해 사용자 피드백 수집용으로 지난해 11월 말 급하게 출시한 것이다. 오픈AI 직원들은 챗봇을 출시하라는 지시를 받은 지 13일 만에 챗봇을 내놓았다. 이 챗봇이 불과 두 달 만에 전 세계 1억 명이 쓰는 제품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폭발적인 인기에 MS는 신이 났고 자사 거의 모든 제품에 AI를 결합하는 속도전에 나섰다. MS가 새롭게 공개한 제품 중 AI가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의 초안을 작성해주는 ‘365 코파일럿’, AI가 개발 코드를 작성해주는 ‘깃허브 코파일럿’은 정보기술(IT) 전문가들조차 충격에 빠뜨렸다.
IT 칼럼니스트 겸 저술가인 자스리트 빈드라는 “365 코파일럿은 MS의 정원(walled garden)에 사용자를 가두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놀라운 것은 MS가 이 속도전에 걸림돌이 될 만한 조직도 없앴다는 점이다. MS는 2020년에 만들어진 AI 윤리 팀 인원수를 계속 줄여 지난 3월에는 아예 팀을 해체했다. MS의 AI 윤리 팀은 엔지니어, 디자이너, 철학자 등 총 30명으로 이뤄져 있었다. 나델라 CEO와 스콧 CTO가 경쟁 업체보다 빨리 AI 제품을 내놓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빌 게이츠도 여러 차례 공개 성명을 통해 MS의 속도전에 힘을 실어줬다. 그는 성명에서 “C:> 프롬프트에 타이핑한 시절만큼이나 AI 이전의 시대는 아득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MS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
MS가 향후 풀어야 할 숙제는 두 가지다. 우선 저작권 침해 소송이다. 개발자들은 MS가 코딩 오픈소스(무상 공개) 플랫폼 ‘깃허브’의 코드를 무단으로 가져가 AI 학습에 활용했다며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AI 학습 데이터를 둘러싼 저작권 소송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생태계 조성 문제도 있다. 구글 검색엔진은 웹 콘텐츠 게시자에게 트래픽을 제공해 콘텐츠 게시자가 광고로 돈을 벌 수 있게 해줬다. 챗GPT와 빙 챗봇은 질문에 답을 내놓는다. 웹 콘텐츠 게시자가 트래픽을 얻지 못할 경우 콘텐츠를 생산할 인센티브를 잃어버릴 수 있다. 최근 MS는 빙 챗봇이 내놓은 답에 광고창을 다는 등 다양한 수익화 실험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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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일반지능(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인간과 유사한 인지 능력을 가진 AI. 바둑에 특화한 ‘알파고’처럼 지금까지 개발된 대부분 AI는 특정한 작업에 대한 전문 지능은 있지만, 다른 작업은 잘 수행하지 못했다. AGI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여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AI를 말한다.
오픈AI Y콤비네이터 CEO였던 샘 올트먼, 제프리 힌튼 교수의 수제자인 일리야 수츠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이 공동 설립한 인공일반지능(AGI) 개발 회사다. 오픈AI는 인간이 읽고 쓰는 방식을 모방하는 거대 언어 모델(LLM) 개발에 집중했다.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이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2018년 오픈AI와 결별했다.
Plus Point
구글과 네이버의 고민은 깊어진다
챗봇이 정답에 가까운 답을 내놓으면 웹 검색 광고 시장 자체가 와해될 수 있다. MS는 잃을 게 없는 게임이지만, 전 세계 검색 시장의 절대 강자인 구글, 한국 검색 시장의 강자인 네이버는 잃을 게 많은 게임이다. 두 회사가 내심 AI 서비스 개발에 속도 조절을 해 온 이유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최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지난해 공개한 고급 언어 모델인 ‘팜’ 기술을 사용해 챗봇 ‘바드’의 기능을 업그레이드했다고 밝혔다. 구글은 바드의 코드 생성 능력이 대폭 향상될 것으로 예상했다.
네이버는 광고에 치중된 구글에 비해 쇼핑, 콘텐츠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한 편이다. 네이버의 약점은 거대 언어 모델을 돌릴 컴퓨팅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마존, 구글, MS에 비해 네이버 클라우드 사업 규모가 매우 작다. GPT-4 등 최신 언어 모델은 영어뿐만 아니라 한국어 같은 사용자가 적은 언어도 잘 이해한다. 이래저래 고차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네이버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