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거제도 옥포조각공원 앞 거제대로. 오르막길 도로를 2~3분쯤 달리니 국사봉을 넘어 탁 트인 바다와 함께 900톤(t)급 중량물을 최고 78m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옥포조선소의 노란색 초대형 크레인(갠트리 크레인·Gantry Crane)이 장관을 연출했다. 크레인 상단에는 ‘DSME 대우조선해양’이라는 파란색 글씨가 선명했다.

옥포조선소에는 총 4기의 크레인이 있는데 이 중 2기는 지난주 대우조선해양을 지우고 ‘한화오션’으로 로고를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22년 만에 산업은행 채권단 관리 신세를 벗어나 한화그룹에 인수된 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 23일 사명을 한화오션으로 변경했다. 사명에서 ‘대우’를 뗀 것은 1978년 대우조선공업 이후 45년 만이다.

거제대로를 달리면 보이는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의 모습. 대형 크레인에는 아직 지우지 못한 대우조선해양 로고가 보인다./박성우 기자

◇ 한화오션으로 변신 중인 옥포조선소

거제시 곳곳은 오는 7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첫 방문을 앞두고 대우에서 한화로 변신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거제시 아주동 옥포조선소 정문은 이미 한화오션 간판으로 교체했지만, 정문 옆 지원센터 건물 옥상에서는 한화오션이 적힌 대형 간판을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직원은 “한화라는 든든한 대기업이 인수하면서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상태”라며 “사내 인트라넷망 전환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거제시 한화오션 옥포조선소 정문 앞 지원센터 건물 외벽에 한화오션 간판이 설치되고 있다. /박성우 기자

정문 인근에는 한화의 인수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거제상공회의소는 ‘한화오션 출범을 지역경제인들과 함께 축하드립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옥포조선소가 위치한 거제시 아주동 주민들도 ‘한화오션과 아주동의 상생발전을 기원합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거제상공회의소와 아주동 주민들이 내건 한화오션 출범 축하 현수막 /박성우 기자

하지만 45년의 역사를 가진 대우조선해양의 흔적은 아직 곳곳에 남아 있다. 도로 안내 표지판에는 대우조선해양이 적혀 있었고, 옥포조선소 인근 시내버스 정류장도 여전히 ‘대우조선해양역’이다. 지나가는 근무자들의 옷도 대우조선해양 유니폼 그대로였다.

조선소 부지를 둘러싼 6.3㎞ 구간의 명예도로명은 ‘대우조선해양로’다. 거제시 관계자는 “명칭 변경이 필요한 도로 안내판 수요를 조사하고 있다”며 “명예도로명도 주민 의견 수렴 등을 거쳐 다음달쯤 한화오션로로 공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화오션 옥포조선소 서문 버스 정류장. 대우조선해양 서문으로 표시돼 있다. /박성우 기자

◇ 오랜만에 웃는 거제 상인들

아주동 일대 지역 상인들도 오랜만에 웃는 모습이었다. 조선업 불황이 한창이었던 2016년에는 ‘임대합니다’라고 적힌 공실 상가가 가득했고, 코로나 사태 때는 여행 수요가 급감하면서 상권 침체기가 이어졌다.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조선소 서문 쪽 상가는 여전히 ‘공실’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간간이 보였지만, 거제 소노캄 리조트를 비롯해 주변 숙소는 여행객들로 가득 찼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대우라는 이름이 사라져서 아쉽긴 하지만, 오랜 기간 힘든 시기를 겪은 만큼 한화에서 잘 운영해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화오션 생산혁신연구센터 /박성우 기자

조선업계 안팎에서는 한화오션의 새 출발에 거는 기대가 크다. 거제와 관련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구인 글이 넘쳐났다. 현재 한화오션의 수주 잔고는 303억달러(약 40조475억원)로 3년 6개월치에 해당하는 일감이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Clarkson)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한화오션은 전 세계 3위 수준의 수주 잔량을 확보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달까지 ▲설계 ▲생산 관리 ▲사업 관리 ▲품질·안전 등 4개 부문 20개 분야에서 인력을 채용했다. 또 고용노동부,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협의해 외국인 전문인력 비자(E-7) 채용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거제시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화오션 인력 채용 공고 /네이버카페 캡처

◇ 한국판 ‘록히드마틴’ 꿈꾸는 한화... 에너지·방산 시너지

시장에서는 한화오션의 실적이 오는 3분기(7~9월)부터 흑자를 기록하면서 정상 궤도에 안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화는 친환경 에너지와 방산 부문에서 사업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화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해 통영에코파워에서 발전기를 돌리고 있다. 한화오션의 LNG 운반선, LNG 생산설비(FLNG) 등을 바탕으로 LNG 시장에서 사업 영역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대우조선해양 경남 거제시 옥포조선소. /대우조선해양 제공

해상풍력사업 진출을 모색 중인 한화 입장에선 한화오션이 경쟁력을 지닌 해상풍력설치선(WTIV)과의 연계도 기대할 만하다고 분석한다. 한화솔루션(009830)은 유럽에서, 한화건설은 국내에서 해상 풍력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한국판 ‘록히드마틴’을 꿈꾸는 한화의 방산 부문과 한화오션의 특수선(군함, 잠수함 등) 사업은 큰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된다. 한화는 이번 인수를 통해 2030년까지 ‘세계 방산 기업 상위 10위′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다.

권혁웅 한화오션 신임 대표이사는 “한때 글로벌 조선 1위에 빛났던 대우조선해양의 신화를 이제 한화오션의 이름으로 보란 듯이 재현해 나가겠다”며 “한화오션을 지속할 수 있는 친환경 기술기업,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글로벌 혁신의 리더로 육성하겠다”라고 말했다.

거제대로를 따라 보이는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의 모습. 멀리 노란색 대형 크레인이 눈에 띈다. 옥포조선소에는 총 4기의 크레인이 있는데, 2기는 한화오션 로고 교체작업을 시작했다. /박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