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있어서 구경하러 왔어요. 생맥주 따를 때 컵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네요.”

강원도 춘천 라데나 골프클럽에서 열린 KLPGA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 골프대회 셋째날인 지난 19일. 갤러리플라자에 설치된 로봇 팔 무리를 발견하고 다가온 갤러리 한 명이 맥주 로봇 앞에서 웃으며 이같이 말했다.

두산 라데나GC 로봇 푸드코트에 설치된 맥주 로봇./박정엽 기자

두산로보틱스는 두산(000150), 두산에너빌리티(034020)가 주최하는 이번 행사에 자사의 협동로봇를 활용한 로키(ROKEY) 푸드타운를 마련했다. 협동로봇은 맥주, 아이스크림, 국수, 치킨, 커피 등 5종의 식음료(F&B) 메뉴를 선보였다.

햇볕이 따갑고 26℃ 까지 올라간 이날 낮 2시는 오전 10시30분부터 차례로 시작된 각 조 경기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한 때다. KLPGA 유일의 두산 매치플레이(두 선수가 시합해 승자를 가리는 토너먼트 방식) 챔피언십 경기를 긴장하며 지켜 본 관람객들은 맥주 로봇과 아이스크림 로봇 앞에 긴 줄을 만들었다.

“로봇이 생맥주를 따르네.”

“아이가 맥주를 먹어도 되는 나이가 되면 같이 와서 보여주고 싶어요.”

14온스컵(414mL) 한 잔을 따르는데 40초 남짓 시간이 걸리는 맥주를 기다리는 동안 기대에 찬 목소리들이 들렸다. 생맥주 로봇 BB BEER BOX는 대구 지역의 시스템통합(SI) 파트너인 동원테크가 만들었다. 터치스크린으로 주문하면 로봇 팔이 컨베이어벨트 위에 놓인 컵을 집어 올린 뒤, 생맥주 탭에서 적당량의 거품이 있는 맥주를 받아 컵받침 위에 올려 놓는다. 아래쪽엔 냉장고가 설치돼 최대 8케그(40L)의 생맥주를 저장할 수 있다.

두산 라데나GC에 설치된 로봇 푸드코트 중 맥주 로봇이 맥주를 따르고 있다. / 박정엽 기자

20년 업력이라는 지역 수제 생맥주의 맛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맥주 로봇의 속도에 대해서는 “한국 사람 성격엔 안 맞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지난해 8월 대구 치맥 페스티벌을 앞두고 아이디어를 얻어 6주만에 첫 모델을 완성했다는 박기태 동원테크 대표는 “로봇이 맥주를 따르는 속도는 사람이 따를 때보다 느리지 않다”며 “로봇 팔은 말을 하지 않고, 얼굴도 없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원테크는 각종 식음료 관련 전시회에 꾸준히 출품하면서 열 곳 가까운 고객을 확보했고, 대형 렌털 전문업체와 협업도 시작했다.

두산로보틱스가 라운지랩과 협업해 출시한 아이스크림 솔루션 아리스도 인기가 많았다. 아리스는 협동로봇이 개별 밀봉 용기에 포장된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을 컵에 담아 고객에게 내놓을 수 있도록 돕고, 아이스크림을 짜낸 밀봉 용기를 폐기하는 역할까지 한다.

1인분씩 담은 밀봉 용기를 쓰는 이유는 위생을 유지하면서, 재고 관리도 쉽게하기 위해서다. 두산로보틱스 관계자는 “카운터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이 한 명만 있어도 아이스크림을 준비해 내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산 라데나GC에 설치된 로봇 푸드코트 중 아이스크림 로봇이 컵에 아이스크림을 받는 과정을 2배속으로 재생했다. / 박정엽 기자

더운 날씨라 국수(누들) 로봇은 인기가 없었다. 두산로보틱스가 CJ(001040)그룹과 함께 내놓은 이 국수 조리 솔루션은 전국의 VIPS(빕스) 중 15개 매장이 시범적으로 도입해 사용 중이다. 고객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고명을 얹은 우동, 쌀국수 등 10여종 이상의 면 요리를 그릇에 담아 내는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시간당 최대 40~50그릇을 만들 수 있다.

이날 출품된 국수 로봇은 VIPS에 들어가는 제품을 만들기 전에 두산로보틱스가 자체 제작한 초기 모델로, 투박한 면이 남아 있었다. 허기를 채우려 로봇이 만든 국수를 택했다는 한 갤러리는 짧은 식사를 마친 뒤 ”국수는 아직 완성도가 좀 부족한 것 같다”며 “면이 조금 덜 익었고 국물도 뜨겁지 않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에 동행했던 로보아르테의 치킨 로봇은 이날도 인기가 많았다. 18종의 음료를 만들 수 있으나 언제나 아메리카노를 가장 많이 만드는 닥터프레소에도 사람이 몰렸다.

두산 라데나GC 로봇 푸드코트 중 국수 로봇. / 박정엽 기자

식음료(F&B) 분야는 상장을 앞둔 두산로보틱스가 특별히 공을 들이는 분야다. 경기 침체로 산업계가 투자를 줄이면서 대기업 생산 현장으로 가는 로봇 수요 증가세가 주춤해졌기 때문이다. 대신 상대적으로 영세한 식음료업계가 인건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동로봇으로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두산은 기존의 제품군보다 저렴하면서, 위생 기준을 충족한 E 시리즈를 내놓으며 식음료 시장을 공략 중이다. F&B 분야는 글로벌 로봇 기업의 장악력이 산업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기도 하다. 시장을 선점할 기회가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관건은 ‘로봇 팔’인 협동로봇보다, 로봇의 손목 아래쪽에 붙이는 부품이다. 엔드이펙터, 그리퍼 등으로 불리는 이 부품과 이를 통제하는 소프트웨어가 로봇의 쓸모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두산 등 협동로봇 업계는 다양한 메뉴를 구축할 수 있는 솔루션 공급자와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