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반도체 신화를 이을 산업으로 2차전지가 꼽히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중국 제외)에서 국내 2차전지 빅3 업체의 점유율은 53%로 절반을 넘었다. K배터리의 위상은 배터리셀을 넘어 소재와 장비 등 2차전지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2030년 전기차 생산이 5400만대로 폭증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2차전지를 놓고 ‘배터리 패권경쟁’을 펼치는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27.2%’.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점유율이다. NCM(니켈·코발트·망간)과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등 삼원계 배터리의 점유율이 아직은 69.8%로 우위지만, LFP 배터리의 점유율은 2020년 5.5%, 2021년 16.9% 등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양극재를 어떤 물질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크게 삼·사원계 배터리와 LFP 배터리로 나뉜다. 한국 2차전지 기업의 주력인 삼·사원계 배터리는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을 활용한 리튬코발트산화물(LCO) 양극재가 기본이다.
양극재에 세가지 원소가 들어가면 삼원계, 네가지 원소가 들어가면 사원계 배터리라고 한다. CATL과 BYD 등 중국 2차전지 기업이 양산한 LFP 배터리는 리튬인산철(LFPO) 양극재를 사용한다. 코발트 대신 인산과 철을 넣은 이원계 배터리다. 리튬이온배터리는 리튬을 제외한 원소의 개수로 이원계, 삼원계 등을 구분한다.
2차전지 업계에선 2024년 LFP 배터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60%를 웃돌아 삼원계 배터리를 앞지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 시장에선 이미 2021년부터 LFP 배터리 점유율이 삼원계 배터리 점유율을 역전했다. 올해 3월 기준 중국 시장 전기차 10대 가운데 7대가 LFP 배터리를 탑재했다.
가격은 싸지만, 성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LFP 배터리가 주목 받으면서 삼원계 배터리를 주로 만들던 국내 2차전지 기업도 방향을 틀었다. 볼륨(대량 판매)형 전기차부터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 저가형 배터리 수요가 많은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LFP 배터리는 삼원계 배터리보다 성능이 떨어지고 무거워 외면 받았으나 기술 개발로 에너지 밀도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LFP 배터리 팩 기준 평균 에너지밀도는 2020년 ㎏당 120~140Wh에서 최근 155~160Wh까지 올라 1회 충전당 주행거리가 400㎞대에 진입했다.
LFP 배터리의 성능이 개선되면서 강점이 부각되고 있다. LFP 배터리는 삼원계 배터리에 많이 쓰이는 니켈이나 코발트 등 고가의 원료를 사용하지 않아 가격이 30%가량 싸다. 또 LFP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인산철은 육면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올리빈 구조’여서 안정적이다. 그만큼 화재 위험이 낮고, 충·방전 과정에서 상태가 나빠지는 열화 현상도 적어 배터리 수명이 길다.
삼·사원계 배터리에 비해 LFP 배터리의 성능이 개선될 여지가 적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전기차뿐만 아니라 ESS나 선박 등으로 2차전지 시장이 넓어질 것에 대비해 LFP 배터리를 연구·개발하고 있다. ESS와 선박 등은 전기차보다 배터리 무게나 부피에 상대적으로 제한이 적어, 가격 경쟁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 세계 ESS 보급량과 시장 규모가 2021년 말 기준 62GWh·약 110억달러에서 2030년 1028GWh·약 262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컨설팅 기업 델븐스(Delvens)는 전기추진선박 시장이 2022년 37억달러(약 5조원)에서 2030년 149억달러(약 20조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은 LFP 배터리보다 더 싼 나트륨이온배터리도 선보였다. 나트륨이온배터리는 리튬이온배터리와 구조가 거의 같지만, 리튬 이온 대신 나트륨 이온이 양극과 음극을 오가며 에너지를 만든다. 나트륨 이온이 리튬 이온보다 입자가 2배 이상 크고 무거워 나트륨이온배터리의 에너지밀도는 LFP 배터리보다도 10% 이상 떨어진다. 배터리 수명도 3분의 2 수준이다.
다만 나트륨은 리튬보다 매장량이 500배 이상 풍부하고, 가격도 10분의 1 수준이다. 나트륨이온배터리의 가격은 LFP 배터리보다 40%가량 저렴하다. 저가형 전기차나 ESS 시장에서 활용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삼성SDI(006400), SK온 모두 시장의 특성에 맞춰 삼·사원계 배터리 뿐만 아니라 LFP 배터리로 제품군을 확대할 계획이다. SK온은 올해 국내 2차전지 기업 중 처음으로 전기차용 LFP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했다. SK온은 올해 안에 LFP 배터리 셀 개발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용 LFP 배터리를 2025년부터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3조원을 투자해 총 16GWh 규모의 ESS용 LFP 배터리 생산 공장도 건설하기로 했다. 삼성SDI도 LFP 배터리 개발을 공식화했다.
관건은 공급망이다. 삼·사원계 배터리와 LFP 배터리 등은 모두 사용하는 2차전지 소재가 다르다. 예를 들어 LFP 배터리는 탄산리튬을 사용하지만, 삼·사원계 배터리는 탄산리튬을 가공·변환한 수산화리튬을 쓴다. 수산화리튬이 탄산리튬보다 니켈과의 합성이 쉬워서다. 또 공정도 달라 각 배터리에 맞춰 새로 공장을 건설해야 한다. 시장 공략을 위해 제품군을 확장하는 것과 공급망·설비 확보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2차전지 기업 관계자는 “기능만 뛰어나다고 새로운 2차전지 제품을 양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수요 기업을 찾고 또 요구하는 공급량을 감당할 수 있는 밸류체인(Value Chain·가치사슬)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정된 재원으로 2차전지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투자가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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