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orb·둥근 물체)의 가운데에 있는 카메라를 쳐다봐 주시면 됩니다. 홍채인식만으로도 별도의 인증 절차 없이 개인 ID(신분증)가 발급됩니다.”

지난 1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일대. 이곳에는 샘 올트먼이 만든 가상화폐 ‘월드코인’의 국내 오퍼레이터(operator·모집인)인 ‘비더시드(BE THE SEED)’의 사무실이 있다. 오퍼레이터는 월드코인 가상자산 지갑 서비스인 ‘월드앱(world app)’ 가입을 돕는 곳이다.

◇ 지갑 개설에 10분… 신원확인 절차 없이 인증

월드코인은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chatGPT)’ 개발자로 유명한 샘 올트먼이 만든 가상화폐다. 홍채를 인식하는 방식으로 가상자산 지갑(가상자산을 보관하는 소프트웨어)을 만들 수 있어 별도의 신원 정보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 현재 가입자에게는 매주 월드코인 1개가 보조금으로 제공된다.

월드코인은 동아시아 첫 진출지로 일본을 제치고 한국을 낙점했다. AI와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국내 시장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더시드는 스타트업을 컨설팅하는 컴퍼니빌더(스타트업을 만드는 회사)로 한국 지역의 오퍼레이터로 선정됐다. 이후 일본에도 오퍼레이터가 등록되면서 오퍼레이터는 현재 전 세계 200여곳으로 늘었다.

월드코인 애플리케이션(앱)을 다운받으면 3단계에 걸쳐 전자지갑을 개설할 수 있다./최온정 기자
비더시드 본사에서 월드코인 전자지갑을 개설하기 위해 홍채를 인식하고 있다./최온정 기자

월드코인에 가입하려면 홍채 인식 장비를 갖춘 오퍼레이터를 찾아가야 한다. 이날 찾은 비더시드는 월드코인 애플리케이션(앱)에 등록된 국내 유일의 오퍼레이터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앱을 내려받은 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설정했고, 핸드폰 분실에 대비해 구글 메일을 백업용으로 등록했다.

지갑 개설은 홍채 인식 과정을 거쳐 완료된다. 비더시드 사무실에 비치된 원형 모양의 오브에는 홍채인식용 카메라와 센서가 부착돼있다. 이 장비에 약 10초간 눈을 갖다 대면 홍채 정보가 숫자코드로 변환되고, 개인 ID가 부여된다. 별도의 신원확인 절차가 필요 없다. ID는 전자신분증 형태로 모바일 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앱 등록부터 홍채인식까지 걸리는 시간은 총 10분이 안 됐다. 지갑을 개설한 뒤 1시간가량 기다린 끝에 최종적으로 월드 ID가 등록됐다. 월드코인 1개가 지갑에 들어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정협 비더시드 대표는 “15일부터 가입자를 받고 있는데, 사람이 몰릴 때는 사무실 앞에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 길어지기도 한다”면서 “아직 오퍼레이터가 없는 중국에서도 직접 방문해 등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샘 알트만 오픈AI 최고경영자./조선DB

◇ 상반기 중 정식 발행… 남미·유럽 등 가입자 170만명

현재 월드코인은 베타버전으로 가입자를 받고 있다. 운영사인 월드코인 홈페이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 발행될 전망이다. 아직까지 정식 발행되지 않은 가상화폐이지만 벌써 남미와 유럽, 아프리카 등을 중심으로 170만명이 가입했다.

월드코인의 인기는 샘 올트먼의 인지도 덕분이다. 1985년 미국 출생인 샘 올트먼은 공유 소셜 서비스 ‘루프트(Loopt)’,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 ‘오케이큐피드’ 등을 창업했다. 작년 11월에는 그가 CEO로 있는 ‘오픈AI’를 통해 챗GPT를 선보이면서 ‘챗GPT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2019년 독일 청년 알렉스 블라니아와 손잡고 스타트업 ‘월드코인’을 설립했다. 안구 스캔기술을 사용한 안전한 가상자산을 만들어보자는 게 그의 목표였다. 월드코인은 작년까지 두 번의 투자 라운드를 통해 1억2500만 달러(한화 약 1677억원)를 확보하며 투자유치에도 성공했다.

월드코인은 홍채인식 기술로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필명을 주로 사용하는 탓에 여러개의 가명 ID를 생성해 네트워크를 공격하는 ‘시빌공격(Sybil attack)’이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홍채인식 기술을 사용하면 사용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어 이런 공격의 위험에서 자유롭다.

월드코인 가입자 현황./월드코인 홈페이지 캡처

◇ 홍채 정보 유출 우려도

일각에서는 월드코인의 생체 인식 기능이 개인정보 보호에 취약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월드코인은 홍채를 인식해 얻은 정보를 암호화하는데, 이 과정에 생체인증 정보가 저장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기밀자료를 폭로한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트위터를 통해 “스캔본을 삭제해도 스캔을 통해 생성된 해시(작은 크기의 데이터)는 남는다”면서 “스캔 데이터를 삭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월드코인은 홍채 스캔으로 전 세계적인 (해시)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있다”고도 했다.

생체정보는 변경이 불가능해 타인이 도용할 경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은행 계좌이체나 핸드폰 잠금 해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홍채·지문인식을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생체정보 관리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2020년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지문·홍채 등 생체정보를 민감정보로 분류했고, 2021년 9월에는 생체정보의 유출 및 위·변조에 대비해 개인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샘 올트먼은 다음달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한다. 올트먼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오는 5~6월 오픈AI 제품을 사용하는 이용자 및 개발자, AI 전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오픈AI 투어’를 떠난다”면서 “특히 정책 결정자들과도 대화할 기회가 생기기 바란다”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