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반도체 신화를 이을 산업으로 2차전지가 꼽히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중국 제외)에서 국내 2차전지 빅3 업체의 점유율은 53%로 절반을 넘었다. K배터리의 위상은 배터리셀을 넘어 소재와 장비 등 2차전지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2030년 전기차 생산이 5400만대로 폭증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2차전지를 놓고 ‘배터리 패권경쟁’을 펼치는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최근 LG화학(051910), 포스코퓨처엠(003670)(전 포스코케미칼), 에코프로(086520) 등 배터리 소재 업계가 양극재 캐파(Capacity·생산 능력) 확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양극재는 2차 전지의 용량과 출력을 결정하는 핵심소재다. 전기차 급증으로 양극재 수요가 늘면서, 캐파 확보를 위한 공장 건설이 잇따르고 있다.
양극재는 리튬·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등을 원료로 제조하며, 원료 조성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의 특성과 성능이 구분된다. 힘 세고 오래가는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양극재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소재 업계에서는 양극재를 만드는 전 단계 화합물인 전구체 내재화에도 힘쓰고 있다.
◇ 양극재 업계, 생산능력 확대 경쟁
11일 배터리 업계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373220), SK온, 삼성SDI(006400) 등 배터리 3사는 양극재 확보를 위해 소재 업체들과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올해부터 2029년까지 7년간 LG에너지솔루션에 약 30조2595억원의 양극재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1월에는 삼성SDI와도 10년간 40조원 규모의 양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포스코퓨처엠은 2030년까지 양극재 생산 능력을 61만톤(t)까지 생산 능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에 양극재를 공급하는 LG화학은 물량 확보를 위해,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30억 달러(약 4조원) 이상을 투자해 양극재 공장을 건설 중이다. 구미에서도 연간 6만t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신축 중이다. LG화학은 현재 9만t 규모의 양극재 생산능력을 2025년까지 34만t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국내 1위이자 세계 2위 양극재 생산기업인 에코프로비엠(247540)은 지난해 연간 양극재 생산능력이 18만t으로 2021년 7만8000t에서 배 이상 늘었다. 에코프로비엠은 2026년까지 북미에서 18만t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엘앤에프(066970)는 양극재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합작공장과 단독공장 설립을 모두 추진하고 있다. 엘엔에프는 현재 13만t인 생산규모를 2026년까지 43만t으로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커지는 배터리 소재 수요에 발맞춰 정부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2030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해 현재 38만톤인 국내 양극재 생산능력을 158만톤으로 4배 이상 확대한다는 목표다.
정부는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투자세액공제율을 최대 25%로 상향했다. 니켈을 80% 이상 사용하는 하이니켈 양극재 가공에 세액공제 혜택을 우선 적용하고 2차전지용 광물 가공 전체로 세액공제 범위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올해까지 예정된 세액공제 기간도 늘려 소재 기업을 지원할 방침이다.
◇ ‘셀→양극재→전구체’ K배터리 생태계 구축
양극재는 배터리의 성능을 좌우할 용량과 전압을 결정하는 핵심 소재다. 양극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초 재료인 전구체가 필요하다. 양극재 원가에서 전구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다. 그만큼 중요한 소재라는 의미다.
전구체는 어떤 물질대사나 화학반응 등에서 최종적으로 얻을 수 있는 특정 물질이 되기 전 단계의 물질을 말한다. 전구체는 니켈·코발트 등을 녹인 금속 용액에 화학반응을 일으킨 뒤 침전·세척·건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미세한 분말 형태의 전구체에 수산화 리튬을 섞어 소성(불에 굽기)하면 양극재로 탄생한다.
배터리 성능과 특성을 결정짓는 전구체는 금속 성분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사용되는 금속 성분은 에너지밀도를 결정하는 니켈(Ni), 안정성을 높이는 코발트(Co)와 망간(Mn), 출력을 향상하는 알루미늄(Al) 등이다. 양극재의 조합에 따라 ▲용량 ▲에너지밀도 ▲안정성 ▲수명 ▲가격경쟁력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배터리 용량은 전기차의 주행거리, 에너지밀도는 전기차의 출력, 안정성은 배터리의 화재 등 사고를 제어하는 능력, 수명은 배터리 사용 기간에 영향을 미친다.
LG화학과 SK온은 각각 1조2000억원, 1조2100억원을 투자해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도 경북 포항에 1조7000억원을 투자해 전구체와 고순도 니켈 원료 생산공장을 건설한다.
다만 전구체 생산을 위해 필요한 광물의 90%가량을 중국에서 수입하는 것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한국무역협회의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 전구체 가운데 중국산 비중은 95.3%에 달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양극재는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데, 양극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구체와 리튬이 필요하고 전구체의 원료는 니켈, 코발트, 망간 등으로 다 연결고리가 있다”며 “한국이 배터리 시장의 공급망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최상단인 베터리셀부터 양극재, 전구체까지 수직계열화하고 있지만, 자원 무기화가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는 낮추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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