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카본(017960)이 화재 피해를 입어 액화천연가스(LNG) 화물창용 보냉재(단열패널) 생산능력의 3분의 1을 잃었다. 지난해말 밀양공장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한 뒤 안전책임자를 새로 선임한 후 벌어진 일이다.
단열패널은 영하 162도의 초저온 물질인 LNG를 배로 운송하기 위해 필수적인 자재다. 멤브레인(막)형 화물창을 사용하는 LNG선을 건조하는 조선소는 선체를 다 만든 뒤 화물창 내에 이 자재를 부착하는 공정에만 9~10개월의 시간을 들인다. 국내 대형 조선소에 납품하는 한국카본과 동성화인텍(033500)이 글로벌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26일 조선기자재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새벽 경남 밀양시 상남면에 위치한 한국카본 밀양 제2공장의 LNG 화물창 단열패널(IP) 가공조립공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생산이 중단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소방당국은 지난 24일 화재 현장에 대한 합동 정밀 감식을 진행했지만, 화재 원인에 대한 단서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 등은 직접적인 피해액을 약 150억원으로 추산했다. 한국카본은 기존에 3000억원대 재산종합보험에 가입해 있어 현금흐름상 충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화재 피해를 입은 공정은 단열패널 제작의 마지막 공정으로, 완제품 생산이 직접 영향을 받게 됐다. 같은 공정을 진행하는 생산라인의 3분의 2는 무사했다. 한국카본은 생산중단에 따른 매출 영향이 지난해 매출액(3693억원) 대비 7.38%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해당 공정의 생산 중단이 얼마나 지속되느냐가 관건이다. 최근 한국 조선사들에 LNG운반선 및 LNG추진선의 수주 잔고가 쌓이면서 보냉재 시장을 양분하는 한국카본과 동성화인텍은 역대 최대물량을 조선소에 공급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받아왔다. 올해 안에 보냉재 부착 작업을 시작해야 할 2024년 LNG운반선 인도물량이 50여척에 이르기 때문이다.
한국카본의 연간 생산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생산 재개에 필요한 시간은 6~12개월로 알려졌다. 생산 시설을 물리적으로 다시 마련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나, LNG화물창 설계사인 프랑스 GTT사로부터 적합성 인증을 받는데 추가로 시간이 소요된다. 지난해 해당 공정의 평균 가동률이 96%에 달해 피해가 없는 공정의 추가 생산 여력도 없다.
한국카본에서는 최근 큰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5일에는 밀양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한 주 뒤인 12월 22일에는 단열재 절단기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근로자 1명이 크게 다쳤다. 지난해 12월의 두 사건은 여전히 조사가 진행중이다.
한국카본은 지난해 12월 사고 이후 부사장급 전사 안전 책임자를 새로 선임했고, 각 공장 단위 안전 책임자도 정비했다. 그러나 이번 화재는 17시간 동안 4200여㎡ 규모의 공장 한 동을 모두 태웠다. 공장은 야산과 가까워 소방당국과 산림당국이 방어선을 구축하지 않았다면 대형산불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