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가 냉방 공조·에너지 등 비(非)보일러 분야 기업들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다. 지난해에도 매출이 증가하며 1조(兆) 클럽에 입성하는 등 사세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빈번한 내부거래와 불투명한 2세 승계 구도는 여전히 문제로 지목된다.

◇ ‘보일러회사 아니다’… 냉방 공조·에너지 매출 1조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귀뚜라미그룹 계열사인 신성엔지니어링의 지난해 매출은 2595억원으로, 전년대비 53.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성엔지니어링과 함께 냉방 공조 분야 계열사인 귀뚜라미범양냉방(2082억원)은 22.2%, 센추리(1568억원)는 10.9% 증가했다.

지난 2019년 국내 보일러기업 귀뚜라미가 아쿠아썸 모스크바 박람회에 설치한 홍보 부스 전경.

2008년 전후로 인수된 이들 3개사는 귀뚜라미그룹의 사업 다각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신성엔지니어링(2009년 인수)은 세계 최고의 드라이룸 설계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센추리(2008년 인수)와 범양냉방(2006년 인수)은 각각 원전 냉각기·냉각탑 제조 분야 국내 1위 기업이다. 귀뚜라미에너지(2703억원)와 TBC(425억원), 닥터로빈(166억원) 등의 매출을 합하면 비보일러분야 매출은 1조원에 달한다.

1962년 설립된 귀뚜라미는 국내 가정용 보일러 산업을 선도해온 기업이다. 1970년대 국산 KS 1호 기름보일러를 개발한 데 이어 1980년대엔 설치가 편리한 기름보일러를 출시하며 신기록을 썼다. 이제는 냉방 공조 분야로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더이상 보일러 회사가 아니다’라는 귀뚜라미 그룹 홍보문구가 현실이 됐다.

귀뚜라미 관계자는 “가정용 보일러 산업이 2000년대 들어 성숙기 단계로 접어들면서 내수시장의 규모는 연간 120만~130만대 수준으로 정체돼있다”면서 “보일러만 해서는 큰 성장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냉난방 공조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 덩치 커졌지만 내부거래 빈번… 2세 승계구도는 불투명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일부 계열사의 그룹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단골 과제로 꼽힌다. 특히 귀뚜라미의 계열사인 나노켐과 귀뚜라미홈시스는 매출의 80% 이상을 특수관계자와의 거래로 벌어들이고 있어 수입원 다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보일러 부품 제조기업 나노켐의 경우 지난해 매출 619억 중 내부거래 금액이 615억원에 달했다. 내부거래는 주로 귀뚜라미를 통해 이뤄졌으며,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9%를 넘어섰다. 2021년에도 내부거래 비중은 92.5% 수준이었다.

귀뚜라미홈시스도 지난해 매출 1억3462만원 중 1억1235만원을 ▲귀뚜라미(1억1024만원) ▲센추리(53만원) ▲귀뚜라미범양냉방(53만원) ▲신성엔지니어링(106만원) 등 특수관계자 거래를 통해 확보했다. 내부거래 비중은 83.5%로, 전년(23.7%) 대비 급증했다.

그래픽=손민균

2세 승계 구도가 불투명한 점도 우려할 부분이다. 2020년 12월 말 기준 최진민 회장은 귀뚜라미홀딩스 지분 31.71%를 보유한 최대주주에 올라있다. 최 회장 슬하 자녀(2남3녀) 중 귀뚜라미홀딩스의 지분을 보유한 장남 최성환(45) 귀뚜라미 관리총괄 전무와 차남 최영환(42) 상무, 셋째딸 최문경(44) 닥터로빈 상무의 보유지분(각각 12.16%, 8.40%, 6.67%)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

2대 주주인 귀뚜라미문화재단(16.16%)이 보유한 주식도 최 회장의 영향권에 있다. 귀뚜라미문화재단은 1985년 최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재단으로, 현대건설(000720) 사장 출신인 김윤규(79) 전 현대아산 부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최 회장은 오너일가 중 유일하게 문화재단의 이사직을 수행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 귀뚜라미홀딩스는 송경석 전 귀뚜라미 사장이, 귀뚜라미는 최재범 전 경동나비엔(009450) 사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여전히 정정하고 강력한 오너십을 갖추고 있어 후계에 대해 들려오는 얘기가 없다”면서 “지난 2020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아직까지는 전문경영인 체제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