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LG(003550)를 이끌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과 구광모 회장이 자동차 전장(電裝·전자장치) 사업의 주도권을 놓고 자존심 대결을 펼친다. 가전과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1~2위를 다퉜던 두 회사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전장 사업을 낙점하면서 새로운 경쟁 구도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장 분야는 두 회장의 부친인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과 구본무 회장 시절부터 시작된 신사업인 만큼, 아버지 세대에서 씨를 뿌린 사업에서 누가 더 많은 수확을 거둘 것 인지에 대해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과 구본무 회장은 생전 자동차 산업 진출에 관심이 많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구광모 LG그룹 회장(오른쪽) /각 사

◇ 9년 만에 흑자로 돌아선 LG 전장

12일 재계에 따르면, LG전자의 올 1분기 매출 20조4178억원, 영업이익 1조4974억원의 실적을 달성했다. 매출은 역대 1분기 중 2번째로 많고, 영업이익은 세 번째로 많다. 이러한 LG전자의 호실적은 전장(VS)과 생활가전(H&A) 부문의 선전의 영향이다. VS사업부는 지난해 2분기 26분기 만에 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한 이후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장 사업은 흑자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LG전자의 전장 부문 수주 잔고가 올해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전자의 전장사업은 선대 회장인 구 회장 때부터 시작됐다. 구 회장 지난 2013년 자동차 부품 설계 엔지니어링 회사 V-ENS를 인수하고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전장 사업을 전담하는 VC사업본부를 출범했다. 이러한 선대 회장의 유지를 이어받은 구광모 회장도 2018년 취임 후 전장 사업의 내실을 다져나갔다.

LG전자는 지난 2018년 오스트리아 헤드램프 기업 ZKW의 지분 70%를 7억700만 유로(약 1조108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나머지 지분 30%는 ㈜LG가 3억3000만 유로(약 4332억원)에 인수했다. ZKW가 BMW와 벤츠, 포르쉐 등 프리미엄 완성차 업체들을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는 만큼 글로벌 완성차 업계로 진출할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2002년 10월 구본무 선대회장이 전기차배터리 개발을 위해 만든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 /LG제공

구 회장은 나아가 2021년 7월 글로벌 전장업체 마그나와 손잡고 LG마그나이파워트레인(LG마그나)을 설립했다. GM·포드 등 북미 완성차 업체들을 주요 고객사로 둔 만큼 해당 지역 전기차 확대의 수혜를 그대로 흡수하겠다는 전략이었다. LG마그나는 올해 설립 2년 만에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LG마그나는 지난해에만 전년 대비 3배 이상 매출 성장률을 기록, LG전자 전장사업 중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LG의 전장 사업이 그간 승승장구 했던 것 만은 아니다. VS사업본부는 2015년 4분기 이후 25분기 동안 적자 행진을 이어왔다. 하지만 시장이 점차 확산하면서 작년 2분기 영업이익 500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행진에서 탈출했다. 이후 VS사업본부는 지난해 2~4분기 연속 영업 흑자를 거두며 사업 개시 9년 만에 처음 연간 흑자(1696억원) 기조로 돌아섰다.

시장 전망도 좋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세계 전장 시장 규모는 2024년 4000억달러(567조원), 2028년 7000억달러(993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LG 관계자는 “전장 사업은 디스플레이, 소재 및 부품 등 LG 그룹사와의 시너지가 발휘 될 수 있는 분야”라며 “모바일(MC) 사업부를 폐지하고 가전과 전장, 충전 인프라 등으로 사업 체질을 바꾸는 성과가 점차 가시화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사상 최대 실적 하만, 그룹 시너지 본격화

삼성전자의 자회사 하만도 그룹 내 ‘미운 오리’에서 ‘황금알 거위’로 평가가 바뀌고 있다. 하만은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8805억원으로 전년 대비 46.7%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31.6% 늘어난 13조2137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이다. 증권가에선 올해 하만의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11월 80억 달러(약 9조3000억원)를 투자해 하만을 인수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 진행한 최대 인수합병(M&A)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간 하만이 호실적을 이어온 것은 아니다. 2016년 6800억원이던 하만의 영업이익은 삼성이 인수한 뒤 2017년 574억으로 급감했다. 이후 2018년 1617억원, 2019년 3223억 원으로 점차 회복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020년에는 555억원에 그쳤다.

이에 삼성전자는 하만의 사업구조 재편에 나섰다. 100여 개에 달하던 자회사를 통폐합했고, 미주 커넥티드 서비스 법인을 폐쇄하는 등 조직도 슬림화했다. 그 결과, 2021년 599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1997년 5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설비가동식에 참가해 개발 중인 자동차 시제품(KPQ)을 시승하고 있다. /삼성 제공

하만의 전장 사업은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모바일 사업과도 시너지가 날 수 있다. 하만이 공급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삼성 반도체를 탑재할 수 있고 모바일과 자동차와 연결하는 텔레매틱스 생태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 실제 하만은 올해 1월 CES 2023에서 운전자 안전 지원 솔루션 ‘레디 케어’를 공개했다. 운전자 안구 활동 등을 통해 상태를 체크하고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기술이다.

‘자동차 마니아’로 잘 알려진 이건희 회장은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하면서 자동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1997년 IMF외환위기가 왔고 결국 1999년 6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후 이건희 회장은 사재 2조8000억원을 출연하며 회생 의지를 보였지만, 2000년 결국 프랑스 르노가 삼성자동차의 지분 70%를 인수해 ‘르노삼성자동차’가 출범했다. 이후 지난해 3월 ‘삼성’ 이름을 떼면서 삼성자동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반도체, 가전, 휴대폰, LG는 가전, 부품이라는 선대 회장 때 만들어 둔 탄탄한 경쟁력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라며 “자식들인 이 회장과 구 회장 등 차세대 리더들이 경영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분야의 개척이 요구되는 상황인데, 전장 분야는 시장성이 좋고 기존 사업군과 시너지가 좋기 때문에 삼성과 LG의 경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