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015760)공사가 대규모 적자 속에서도 전기요금을 적극적으로 인상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민간 에너지 업계 고심이 깊어졌다. 정부가 요금 인상 대신 한전의 전력구매비용 한도를 정해두는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를 다시 시행할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한전의 적자는 지난해 연결 기준 32조6552억원 규모다. 원자잿값 인상, 전기요금 동결 등으로 인한 재무 부담이 업계로 전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 건물에 설치된 전기 계량기의 모습. /뉴스1

27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말 2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다. 당초 전기요금은 지난 21일 확정될 계획이었지만,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간에 이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발표 시점이 연기됐다. 한전은 이미 지난 16일 요금 인상안을 제출한 상태다.

한전이 제시한 2분기 요금 인상폭은 1분기(㎾h당 13.1원)와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내 전기요금은 기본요금, 연료비 조정 요금, 기후환경요금, 기준연료비 등으로 구성된다. 한전이 매 분기 산업부에 연료비 변동분을 제출하면 산업부가 기재부와 협의한 뒤, 전기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한전에 통보된다.

연료비 조정요금, 기후환경요금은 동결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요금 인상 여부의 핵심인 기준연료비를 두고 양 부처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산업부는 한전 경영 정상화를 위한 적정 수준 이상의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기재부는 물가 부담에 대한 정부 기조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기요금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업계 안팎의 관심은 SMP 상한제 재시행으로 쏠리고 있다. SMP 상한제는 한전이 민간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직전 3개월간 전력도매가 평균이 최근 10년간 전력도매가 상위 10%보다 높으면 평균 가격의 150%(1.5배)까지 상한선을 두는 것이다.

산업부는 지난해 12월 발전 원가 부담 급증 속 SMP 상한제를 1년 후 일몰 조건으로 시행했는데, 3개월 연속 적용할 수 없다는 규정으로 지난달까지만 운영하고 이달은 중단한 상태다. 오는 4월부터 다시 시행할 수 있지만, 민간 에너지 업계 반발이 거세지면서 요금 인상 여부와 마찬가지로 결정 난 건 없는 상태다.

민간 에너지기업들은 SMP 상한제 종료와 더불어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한전 경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시행된 제도가 민간 기업들의 손실 확대로 이어진 데다 한전 적자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SMP 상한제가 지속될 경우 향후 에너지 공급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한국집단에너지협회를 비롯한 국내 11개 에너지 단체는 공동성명서를 내고 “SMP 상한제 시행에도 한전은 여전히 조(兆) 단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라며 “민간 발전사의 경우 SMP 상한제로 인한 손실이 2조원을 넘어 올해 계획한 3조원 규모 투자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라고 했다.

한전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SMP 상한제가 도입된 12월의 평균 SMP와 SMP 상한의 차이로 민간 발전사의 정산금은 한 달간 약 6840억원 감소했다. 이를 토대로 SMP 상한제가 시행된 3개월 동안 민간 발전사의 정산금은 약 2조1000억원 줄어든 것으로 추산됐다.

앞서 대한태양광발전사업협회와 전국태양광발전협회는 지난달 27일 산업부를 상대로 SMP 상한제에 대한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정부가 불공정한 재생에너지 시장을 형성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조만간 SMP 상한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도 나설 계획이다.

한전은 28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지난해 재무제표, 이사 보수 한도 등 안건을 승인받을 예정이다. 지난해 33조원에 이르는 역대 최악 적자를 기록한 만큼 재무 안정성 확보를 요구하는 주주들 원성이 커질 전망이다. 한전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근본 해법은 SMP 상한제 등을 통한 비용 절감이 아닌 요금 인상이라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