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 지상에선 1200℃의 슬래브(Slab·두께 45㎜ 이상의 편평한 강편)가 압연기와 냉각기, 권취기(감는 기계) 등을 지나 기초 철강재인 열연코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설비에 필요한 기름을 저장하는 셀러(Cellar·지하실)로 내려가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조명은 밝았고, 베이지색 벽에선 새 페인트 냄새가 났다.
지난해 11월 보조 조명 아래 벽과 설비 곳곳에 남아있던 침수 피해의 흔적은 더는 찾을 수 없었다. 서민교 2열연공장 공장장은 “설비 교체는 물론 벽과 배관을 모두 고압세척기로 닦아내고 도색도 거의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2열연공장은 포항제철소 전체 생산량의 30% 수준인 연간 500만톤(t)의 제품을 생산하는 핵심 설비다. 하지만 지난해 9월 6일 태풍의 영향으로 인근 하천인 냉천이 범람했을 때 직격탄을 맞았다. 깊이 8m의 지하 공간에 물이 가득 찼다. 배수 작업에만 4주가 걸렸고 바닥에 쌓인 진흙을 걷어내는 데 2주가량이 더 필요했다. 모터를 하나씩 닦아낸 끝에 2열연공장은 조업 중단 100일 만인 지난해 12월 15일부터 다시 가동 중이다.
이현철 2열연공장 파트장은 “오늘(23일)이 복구 99일째로 공장은 잘 돌아가고 있다”며 “재가동 후 첫 제품이 나왔을 때 하루 종일 울었다”고 말했다.
침수 피해를 겪은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완전 정상화를 선언한 지 두달이 지났다. 침수 이후 복구 작업에 집중해왔던 포스코는 생산 과정 전반이 제 수준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앞으로 스마트 기술과 저탄소 친환경 공법을 확대 적용한 미래 제철소를 구현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날 2제강공장에선 쇳물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성분을 조정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고로(용광로)에서 생산한 쇳물을 담은 용기를 크레인이 옮겨와 기울였다. 쇳물을 비롯한 용기의 총 무게는 480톤(t)에 달했지만, 큰 소음은 없었다. 용기 안에 있던 1350℃의 쇳물이 전로(Converter) 안으로 4분가량 쏟아져 들어갔다. 이런 작업은 하루에 80번 안팎 반복된다.
2제강공장도 지난해 9월 침수로 가동을 멈췄었다. 최주한 2제강공장 공장장은 “컨테이너 100개가 들어갈 수 있는 지하 피트(Pit)가 4곳 있는데, 쏟아져 들어오는 물로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변했었다”며 “뜨거운 쇳물을 받으려면 용기를 달궈야 하는데 가스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목재 등을 이용해 하루 종일 가열했다. 결국 공장이 물에 잠기고 136시간 만에 다시 가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포항제철소는 지난 1월 20일 도금 CGL(Continuous Galvanizing Line) 공장과 스테인리스 1냉연공장을 끝으로 복구를 마쳤다. 포스코 임직원들은 물론 협력사, 시공사, 자원봉사자 등 연인원 140만명이 복구작업에 나선 지 135일 만이었다. 포스코는 이후 제원 기준 최대 생산량에 도달할 수 있는지 3일간 시험을 진행했고, 설비가 모두 양호한 것으로 판단했다.
품질 부적합률은 침수 피해 전인 지난해 8월을 100으로 봤을 때 지난달 말 83으로 오히려 더 나아졌다고 했다. 천시열 포항제철소 공정품질담당 부소장은 “고객들이 제품 관련 불만을 제기할 때 보통 몇백t 단위인데, 침수 피해 이후 생산된 제품 중에선 40㎏에 불과하다”며 “품질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안전 매뉴얼을 강화하는 등 재발 방지대책을 세웠다. 포항제철소 정문에서 3문까지 약 1.9㎞ 길이에 물을 막는 차수벽을 세우기로 했다. 이날 포항제철소 주변의 철조망이 철거된 자리에는 차수벽 기초 공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장마가 오기 전인 오는 6월까지 공사를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다.
포스코는 범람했던 냉천을 따라 1.65㎞ 길이의 제방에 시트 파일(SHEET PILE)을 박아 구조를 강화하고, 제철소 내 변전소 등의 주요 설비 주변에 1m 높이의 차수벽을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다시 미래 제철소 구축으로 무게 추를 옮기고 있다. 이날 포항제철소 2고로에선 쇳물을 배출하는 출선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상황실에선 고로의 온도나 압력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포항제철소의 2고로는 이른바 ‘스마트 고로’로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가장 먼저 도입했다.
대표적인 스마트 공정 기술이 ‘포스플롯(PosPLOT)’이다. 포스코는 이 시스템을 통해 철광석과 석탄을 얼마나 투입할 지 등의 조업을 설계한다. 포스플롯이 원가와 품질은 물론 탄소배출량까지 고려해 적정량을 3분 만에 산출해준다. 기존에는 8일이 걸렸던 일이다.
최명석 2고로 공장장은 “2019년 스마트 고로 적용 후 연간 생산량이 8만5000t 늘었고, 쇳물 품질 불량률도 13.3%에서 4.9%로 줄었다”며 “사람이 직접 보고, 점검해야 했던 것도 운전실에서 통제할 수 있어 안전 문제도 개선됐다”고 말했다.
2고로 하부에는 1200℃의 열풍을 불어넣는 30개의 풍구가 있었다. 풍구와 연결된 노란색 새 파이프가 눈에 띄었다. 포스코는 다음달부터 이 파이프로 천연가스(NG)를 투입하는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포스코는 또 2고로에 저탄소 철강원료인 HBI(Hot Briquetted Iron)나 펠릿(Pellet)을 넣는 시험도 오는 5월부터 진행한다.
포스코는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핵심 기술인 수소환원제철을 개발하고 있다. 수소환원제철은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환원제를 석탄 대신 그린 수소로 하는 기술이다. 포스코는 포항제철소에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HyREX(하이렉스) 시험 설비를 세울 부지를 조성하고 있다. 2024년 착공해 2026년부터 연산 30만t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데모 플랜트를 가동할 계획이다. 2030년까지 연산 100만t 규모의 시험 설비도 만들기로 했다.
천시열 부소장은 “많은 분의 도움으로 포항제철소를 재가동할 수 있었다. 이제 스마트 기술이나 친환경 기술 등으로 다시 돌아가 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