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에 나선 박형준 부산시장은 엑스포 유치전에 협력해주는 기업 가운데, 동원그룹(동원산업)에 대한 특별한 감사를 밝혔다.

여러 섬들로 구성된 나우루, 마셜제도, 바누아투, 사모아,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통가, 투발루, 팔라우, 피지 등 태평양 도서국은 작은 나라들이지만 모두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으로 개최지 선정에 총 10표를 행사할 수 있다. 부산이 엑스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꼭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곳이다.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등 국내 대기업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지만, 경제 규모가 작은 도서국과는 뚜렷한 연결 고리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기업이 동원산업(006040)이다. 참치통조림을 만드는 동원산서국 인근 바다에서 참치를 잡으면서 현지 정부 관계자들과 탄탄한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세계 최대 어업회사로 ‘동원’이라는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김재철 여수엑스포 유치위원장(오른쪽)이 2007년 8월 22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국무총리 접견실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명예회장(왼쪽)과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DB

◇ 도서국에서는 삼성·SK 안 부러운 동원그룹

9일 대한상공회의소와 엑스포 유치위원회 등에 따르면, 동원산업은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이명우 동원산업 부회장(당시 사장)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조대식 SK 수펙스협의회 의장, 이인용 삼성전자(005930) 사장 등과 함께 피지에서 열린 태평양 도서국 포럼(PIF)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재계 순위 1~2위인 삼성, SK와 재계 순위 51위인 동원그룹이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동원산업이 도서국 유치 활동에 투입된 것은 현지에서 남다른 인지도와 관가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이다. 동원산업은 ‘참치왕’이라고 불리는 김재철 명예회장이 1969년 설립했다. 김 회장은 23세이던 1958년부터 남태평양과 인도양에서 참치잡이 어선 선장으로 활동하며 ‘캡틴 킴’으로 명성을 날렸다. 1982년에는 국내 최초 참치통조림인 동원참치를 선보였고 현재까지 국내에서 80%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동원산업의 사모아 현지 스타키스트 근로자들./동원그룹 제공

이러한 사업 경력 덕분에 동원산업은 도서국과 오랜 기간 파트너십을 맺어왔다. 도서국인 파푸아뉴기니는 중요한 참치 어장으로 1992년부터 우리나라와 어업 협정을 체결해 현재까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원산업과 나우루 정부는 2년마다 우리 참치 어선의 조업 일수, 가격, 조업 척수 등을 논의하는 참치 선망 입어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만큼 도서국 각 정부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들과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는 의미다.

사모아에는 동원산업이 인수한 미국 1위 참치통조림 기업 스타키스트의 공장이 있다. 사모아에서는 스타키스트가 최대 기업으로 현지 채용 인원만 2000여 명이 넘는다. 참치 어획뿐만 아니라 목공, 기계, 배관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고용하면서 현지 국민 사이에서는 직업 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또 동원산업은 2011년 솔로몬군도 어항 개발사업에 참여했고, 2014년에는 미크로네시아 폰페이 청년들을 위해 체육관 복싱링을 기증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동원산업은 PIF 정상회의에도 참석했다. PIF 참여 회원국 18개국 중 뉴질랜드, 나우루, 마셜제도, 바누아투, 사모아,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통가, 투발루, 팔라우, 피지 등 11개국이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이다. 뉴질랜드를 제외하면 작은 도서국들이지만 총 10개의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엑스포를 놓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경쟁하고 있어 도서국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다.

유치위 관계자는 “동원산업이 현지 어획권 협상을 위해 도서국의 의사결정권자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고, 비즈니스 관계를 통해 신뢰가 확보돼 있다”며 “덕분에 한국 정부의 유치 활동에도 힘이 실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오른쪽 두번째)과 이명우 동원산업 부회장(오른쪽 첫번째)이 지난해 7월 PIF에 참석해 나우루 대통령 특사(오른쪽 세번째)와 나우루 수산부 장관(오른쪽 네번째)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원그룹 제공

◇ 김재철 회장의 남다른 엑스포 사랑

동원산업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회장은 1999년부터 7년간 한국무역협회장을 맡았고, 2006년에는 2012여수엑스포 유치위원장을 맡았다. 정부에서는 유치위원장을 맡아줄 사람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랜 기간 무역업과 바다 관련된 사업을 펼치고 있던 김 회장을 적임자로 봤다. 당시 여수엑스포 유치를 위해 나섰던 정부 측 책임자는 당시 국무총리였던 현 한덕수 총리였다.

김 회장은 위원장으로 선임된 뒤 처음으로 유치위 조직을 정비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각 운영하던 유치위원회를 하나로 합쳤다. 또 140개국 개최지 선정 투표 직전 프레젠테이션을 위해서 호텔 방에서 매일 1시간 이상씩 영어 특별 과외도 받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한국이 여수엑스포 유치에 성공하면서 김 회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유치의 주역으로 평가받았다.

동원그룹의 참치잡이 배./동원그룹 제공

김 회장은 2020년 “인공지능(AI) 인재양성에 사용해달라”며 카이스트(KAIST)에 사재 500억원을 기부했다. 카이스트는 이 뜻을 기려 AI 대학원을 ‘김재철 AI 대학원’으로 이름 지었다.

김 회장은 2004년 계열 분리를 통해 금융은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에게, 비금융사업은 차남인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에게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