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이 메타버스 기반 훈련체계를 새로운 먹거리로 삼고 관련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전투기, 헬기 등을 생산하는 방산 기업임에도 게임사와 협력해 가상현실(VR) 기반 시뮬레이터 개발을 시작했고, 이후 게임 산업까지도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기업 체질을 바꾸겠다는 포부다.

8일 업계에 따르면 KAI는 최근 게임 회사인 에픽게임즈 코리아와 VR형 비행 훈련체계 개발을 위한 기술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두 회사는 에픽게임즈의 ‘언리얼 엔진 5′를 적용해 KF-21 VR 비행 훈련 시뮬레이터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언리얼 엔진은 실시간 3D 제작 도구로 게임, 건축, 영화, 자동차 등의 가상현실 세계 구현에 사용되고 있다.

경상남도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훈련체계 통합실에서 KT-1 훈련기의 VR 시뮬레이터를 체험해보고 있다./정재훤 기자

이는 KAI가 구상 중인 ‘미래형 메타버스 훈련체계’ 신사업의 일환이다. KAI는 20년 넘게 축적해온 시뮬레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확장현실(XR), 가상현실(VR)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해 메타버스 공간에서 조종사들이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조종훈련을 할 수 있는 훈련체계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KAI는 “VR형 비행 시뮬레이터는 기존 대형(Full-Flight급) 비행 시뮬레이터 훈련에 앞서 실습 조종환경을 제공하는 훈련체계로 대규모 합동훈련이 가능해 조종사 훈련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면서 “소형화되고 운용유지 비용이 저렴해 훈련비용도 절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KAI가 미래형 시뮬레이터 개발을 구상하는 이유는 높은 부가가치 때문이다. KAI에 따르면 항공기 개발은 크게 3개 부문(기체 제작, 후속 지원 체계, 훈련 체계)으로 구분된다. 이 중 시뮬레이터 등 훈련 체계 개발 부문 규모는 전체의 5% 정도로 가장 작지만, 실질적 홍보 효과 등은 다른 부문보다 훨씬 크다.

KAI 시뮬레이터는 완제기 수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해외 구매자와 군 관계자들이 실제와 유사하게 만들어진 시뮬레이터를 탑승해보며 기체 성능을 간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무기를 수출할 때 훈련용 시뮬레이터도 함께 수출하기 때문에, 훈련 체계의 완성도 역시 수출 협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KF-21 비행 실습형 CBT 구조물 렌더링 이미지./KAI 제공

KAI는 완제기를 만드는 기업이라 시뮬레이터 개발에 필요한 기술자료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도 경쟁력으로 꼽힌다. 시뮬레이터는 가상의 공간에 완제기를 구현해내는 것과 같아 기체 각 계통의 기술 자료를 확보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KAI는 완제기 개발과 시뮬레이터 개발 기술을 동시에 키워왔고, 결과적으로 관련 노하우를 집적해 자사 전투기·헬기뿐만 아니라 다른 육상·해상 무기체계 시뮬레이터 개발도 가능한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KAI는 지난 2020년 장보고-3 잠수함 시뮬레이터를 개발해 해군에 납품한 전력이 있다. KAI는 “메타버스 훈련체계는 헬기와 무인기, 잠수함·고속상륙정 등으로 확대 적용이 가능하며 민·관 등 고위험 첨단장비 운영인력이 필요한 산업계로 기술 전파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KAI는 국내 시뮬레이터 영상 시스템 시장이 향후 5년간 3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봤는데, 이 중 절반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이어 1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해외 시장에도 수출 패키지 사업을 통해 진출할 계획이다.

KAI는 게임 사업 진출도 꾀하고 있다. 특허검색시스템 키프리스(KIPRIS)에 따르면 KAI는 지난해 11월 ‘에어로버스’라는 이름의 상표권을 출원했는데, 해당 상표의 지정상품에는 ‘가상현실 게임용 소프트웨어’, ‘메타버스용 게임 소프트웨어’, ‘비디오게임 카트리지 및 카세트’ 등 게임 관련 내용이 다수 담겼다. KAI는 시뮬레이터 개발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접목해 실제성을 더한 항공기 조종·격추 게임 등의 개발에도 강점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KAI는 미래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를 꾸준히 늘려 나갈 예정이다. 강구영 KAI 사장은 지난 1월 ‘글로벌 KAI 2050 비전 선포식’을 개최하면서 “2027년까지 연구·개발(R&D)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하고, 2028~2023년에는 매출의 5~10%를 지속 투자해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