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마르쿠(Andrei Marcu) 유럽기후변화·지속가능전환협의회(ERCST) 소장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하면 EU의 수입이 10%가량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며 “EU가 최종 생산하는 제품의 가격 경쟁력도 떨어져 수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쿠 소장은 지난 2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인플레이션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ERCST는 유럽 기후정책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비영리 단체다. 다양한 산업, 정부, 국제기구 등의 지원을 받아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앞서 ‘CBAM에 대한 국제적 의견’ 정책보고서를 발간해 EU에 제출하기도 했다. 제품의 탄소배출량만큼 비용을 부과하는 CBAM이 오는 10월부터 시범 시행을 앞두고 마르쿠 소장을 만나 EU의 기후 정책과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마르쿠 소장과의 일문일답.
-EU가 CBAM을 도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CBAM의 핵심 목표는 수입 제품도 유럽 내 생산 제품과 동일한 탄소배출권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탄소누출(생산 설비 등을 규제가 약한 해외로 옮기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다. (EU는) 그러면 공정한 경쟁이 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새로운 고객을 얻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잃는데는 이메일 한통이면 된다는 점을 간과했다.”
-무슨 의미인가.
“수출을 고려하지 않았다. EU는 대부분 중간재를 수입해 온 뒤, 완성재를 만들어 수출한다. 예를 들어 알루미늄을 들여올 때 CBAM 시행에 따라 가격이 오르면,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차량의 생산 비용이 늘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CBAM이 수입·수출에 미치는 파급력에 대해서는 어떤 모델을 쓰는지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영향이 있을 것은 분명하다.”
-EU 내수에도 영향이 있을까.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동안 철강을 더 싼 가격에 수입해 올 수 있었지만 CBAM을 시행하면서 탄소가격이 포함되면 철강 가격이 오를 것이 명백하다. 철강으로 만드는 최종재도 비싸질 수 있고,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주게 된다.”
EU 집행위원회와 의회, 이사회는 CBAM을 비롯한 규제를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55% 이상 줄이는 ‘fit for 55(탄소감축 입법안)’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수출 국가들은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CBAM과 같은 규제가 환경 보호와 산업 보호 어느 쪽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보나.
“EU의 공식적인 입장은 순수한 환경 문제라고 하겠지만, 둘 모두라고 본다. 예를 들어 (EU 탄소배출권 거래제 상) 톤(t)당 5유로나 10유로 정도를 내야 한다면 기업들은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t당 100유로가 되면 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탄소 가격과 기업의 경쟁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CBAM이 WTO 자유 무역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어느 국가일지는 모르겠지만 WTO에 결국 CBAM을 제소할 것이라고 본다. CBAM이 지구와 환경을 살리자는 좋은 취지로 도입하는 것이라고 해도, WTO의 자유 무역에 부합할지를 두고 찬반이 엇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운용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등 정치적 이해관계도 다 다르다. 결국 WTO 안에서 (CBAM에 대한) 도전이 있을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위기가 불거진 상황에서 친환경 기조가 이어질까.
“유럽 사람들이 에너지 안보와 경제성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생각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당장 이 문제가 (친환경 정책에 대한) 논쟁을 촉발하지는 않겠지만, 영향을 많이 받는 계급일수록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독일의 에너지업체가 미국으로 회사를 이전하면서 일자리 3000개가 사라졌고, 전기차 전환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도 있다.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도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