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강관(강철로 만든 관) 기업의 수출 규모가 대(對)미국 수출 물량이 제한된 2018년 이후 가장 많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석유·가스 산업이 활기를 띠면서 강관 수요도 늘었기 때문이다. 최대 시장인 미국이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어, 국내 강관 기업들은 현지 투자로 대응하고 나섰다.

16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강관 수출 규모는 총 184만톤(t)으로 2021년보다 11.7% 늘었다. 2020년 154만t, 2021년 165만t에 이어 3년 연속 증가세가 이어졌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 수출 물량이 102만t으로 전체의 55.4%를 차지했다. 미국의 한국산 강관 수출 쿼터(수입제한 물량)가 연간 103만t 남짓인 점을 고려하면 최대치를 수출한 셈이다. 한국산 철강재는 트럼프 정부 시절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부과되는 관세 25%를 면제받는 대신 2018년부터 연간 수출 물량이 제한되고 있다.

세아제강 경북 포항공장에서 강관을 생산하고 있다. /세아제강 제공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동남아(20만t), 캐나다(18만t), 중동(10만t) 등도 지난해 수출한 강관 규모가 2021년보다 2~3배가량 뛰었다. 유정용 강관(OCTG)과 액화천연가스(LNG)용 강관 수요가 많은 지역이다. 두바이유 기준 지난해 평균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등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석유·가스 산업이 활황을 보이면서 강관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출에 힘입어 국내 강관 기업의 실적도 강세였다. 세아제강(306200)은 지난해 별도기준 매출 1조8018억원, 영업이익 2152억원을 기록해 2017년 판재사업 부문(세아씨엠) 분할 이후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휴스틸(005010)도 지난해 매출 1조311억원, 영업이익 2888억원을 올리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세아제강과 휴스틸은 강관 생산능력 기준 국내 1·2위 기업이다.

최근 유가와 LNG 가격 모두 꺾였으나, 북미 지역 원유 시추 활동이 늘면서 강관 수요는 꾸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글로벌 원유개발업체 베이커휴즈(Baker Hughes)에 따르면 강관 수요를 가늠할 수 있는 미국 내 리그 카운트(Rig Count·원유 생산을 위해 구멍을 뚫은 횟수)는 이달 현재 761개로 지난해 동기보다 20%(126개) 많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역시 올해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하루 1250만배럴로 사상 최대치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미국의 철강 수출 쿼터제에 더해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미국 제품 구매)’ 정책으로 국내 강관 기업이 수출에만 기댈 수 없는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연두교서(국정 연설)에서 “내가 지켜보는 동안 미국의 도로, 다리, 고속도로 모두 미국산 제품으로 만들어질 것”이라며 정부 주도의 인프라 건설에 미국산 사용을 의무화하겠다고 했다.

국내 강관 기업들은 미국에 공장을 세워 대응하고 있다. 넥스틸은 경북 포항공장에 있던 조관기(강관 제조 설비)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공장으로 옮겨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지에서 강관을 생산하고 있다. 넥스틸은 휴스턴 공장은 연간 최대 12만t의 강관을 생산할 수 있다. 휴스틸은 미국 텍사스주 클리블랜드에 연산 7만2000t 규모의 강관 공장을 짓고 있다. 2024년 말 완공 후 연간 생산능력을 최대 25만t까지 키우는 2차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

세아제강지주(003030)는 2017년부터 미국 휴스턴에 연산 25만t 규모의 공장을 운영 중이다. 세아제강지주 관계자는 “현재 미국 내 구체적인 증설 계획은 없지만, 지속해서 시장 상황을 살피면서 판매 확대를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