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전투기’로 불리는 KF-21엔 다수의 국산 장비가 장착되지만, 전투기의 심장으로 불리는 엔진은 여전히 국산화가 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아직 고성능 제트엔진 기술 개발 수준이 낮아 미국으로부터 엔진을 수입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수출을 위해선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제약이 있다. 업계에서는 항공 엔진 분야 육성에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F-21은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이 주관하고 한국-인도네시아가 공동 개발하는 4.5세대급 첨단 전투기로 총 사업비는 9조원에 가깝다. KF-21은 오는 2026년까지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KF-21에는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다수의 장비가 장착된다. 한화시스템(272210)이 만든 능동형 위상배열(AESA) 레이더가 대표적이다. AESA 레이더는 미국·영국·프랑스·스웨덴·이스라엘 등 일부 선진국만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만큼 개발이 어려운 최첨단 기술이지만, 한화시스템은 국내 기술로 세계 12번째 개발에 성공했다.
기존의 비능동형 위상배열 레이더는 동일한 주파수를 가진 전파만 발사할 수 있지만, AESA 레이더는 임의의 방향으로 임의의 주파수를 가진 전파를 발사할 수 있어 레이더 추적 미사일의 공격을 받을 확률이 훨씬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LIG넥스원(079550)도 KF-21에 탑재되는 통합 전자전 체계(EW Suite)를 개발했다. EW Suite는 적의 레이더 신호를 탐지·교란하고, 채프(미세한 금속 먼지로 레이더를 방해하는 장비)와 플레어(불덩어리를 사출해 적외선 유도 미사일을 회피하는 장비) 탄을 발사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전투기 엔진만큼은 아직 국내 기술로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KF-21에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사의 F414-400k 엔진 2기가 탑재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가 GE사와 제휴를 통해 라이선스 방식으로 생산하는데, 설계와 관련한 원천 기술은 GE사에 있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조립과 생산을 하는 형태다. KAI의 FA-50 경전투기도 GE 사의 F404-102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F-21 엔진 부품을 국산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여전히 국산화 수준은 40%정도에 머물러있다. 엔진 핵심 기술이 전부 GE사에 있어 사용되는 소재와 세부적인 개발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산화율을 높이는 것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항공기 엔진 시장은 미국 GE와 프랫&휘트니(P&W), 영국의 롤스로이스 등 3개 사가 독과점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해외 기술 이전을 막으면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항공기에 사용되는 가스터빈엔진은 미사일추진구동계와 거의 흡사해 국제 규약상 거래나 확산이 어렵고, 또 관련 기술을 보유한 국가들도 엄격히 기술 유출을 통제하고 있다”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관련 기술을 GE사로부터 이전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향후 KF-21 개발이 완료된 뒤 엔진 때문에 제3국 수출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KF-21의 수출을 허락할 수 있지만, 한국이 무기를 수출하는 데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과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은 자주국방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엄연히 다른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항공기 엔진 개발을 시작했으나 글로벌 제트엔진 기업과 비교해선 아직 걸음마 단계다. 지난달 30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000 마력급 가스터빈 엔진 핵심 부품소재 장(長)수명화 기술’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2027년까지 488억원을 투입해 ‘무인 복합형 전투회전익기(UCCR)’ 엔진의 핵심부품 6종에 사용되는 소재를 개발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무인기 엔진은 유인기 엔진보다 개발 난도가 낮고, 엔진 자체가 아닌 엔진에 사용되는 소재를 개발하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위사업청도 2020년부터 추력 5500lbf(파운드힘)급 무인기용 터보팬 엔진을 개발하고 있으며, 1만lbf급 터보팬 엔진의 핵심 구성품인 터빈 공력-냉각설계 및 기술평가 등의 연구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KF-21에 탑재되는 F414-400 엔진(최대 추력 2만2000lbf)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치다.
결국 항공 엔진 분야 육성에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12대 국가전략기술’과 ‘50대 세부 중점기술’을 발표하면서 그중 하나로 ‘첨단 항공가스터빈엔진·부품’을 선정하기도 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는 “항공 엔진 인프라 구축은 국가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높은 생산 유발 효과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며 “국내 여건을 고려하면 개발 난이도는 높을 것으로 예상되나, 기술자립을 통한 해외 의존성 탈피와 정책적 부합성, 미래 부가가치 창출 편익을 고려한다면 첨단 항공 엔진의 개발 필요성은 충분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