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기술을 요구하는 산업계에서 ‘수율(설계 대비 정상품의 비율) 높이기 전쟁’이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다. 업체 간 기술력의 간격이 빠르게 좁혀지는 상황에서, 투입한 원재료 대비 높은 산출량이 나오는 업체가 수주에 유리해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삼성전자(005930)는 반도체 수율이 낮아 제품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고, 배터리 업계 후발주자 SK온이 흑자 전환에 늦어지는 주된 이유로도 낮은 수율이 꼽히고 있다.

반도체의 수율은 웨이퍼(실리콘 원판) 한 장에 설계된 칩(Chip)의 최대 개수 대비 생산된 양품 칩의 개수를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를 뜻한다. 높은 수율을 얻기 위해서는 공정 장비의 정확도와 클린룸의 청정도, 공정 조건 등 여러 제반 사항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전자 천안 사업장에서 반도체 패키징 생산 라인을 둘러보며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반도체 생산 과정은 크게 설계-웨이퍼 생산-패키징 및 테스트 등 3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이 중 일반적으로 말하는 반도체 수율은 웨이퍼 완성 단계에서 개별 칩들의 전기적 특성을 검사하는 EDS(Electrical Die Sorting) 공정을 거치며 파악된다.

EDS 공정을 거치며 불량으로 판정된 칩들은 어떤 지점에 문제가 발생했는지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FA(Failure Analysis) 공정을 추가로 거치게 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불량의 원인을 찾아내고, 초기 설계에 문제가 있다면 설계도를 수정하면서 수율을 높여 나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하나의 완성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 개월이 걸리고, 또 수백개의 공정을 거치며 만들어지기 때문에 최초 설계부터 장비 배치, 근무자의 숙련도 등 다양한 변수가 수율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 스마트폰 ‘갤럭시S22′에 자사의 모바일 AP(Application Processor) 반도체 ‘엑시노스 2200′을 탑재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미국 퀄컴의 ‘스냅드래곤 8′ 반도체로 교체했다. 삼성전자는 자사의 파운드리 4나노(1나노미터(nm)는 10억분의 1미터) 공정에서 엑시노스 2200을 생산하려 했으나, 수율이 낮게 나와 납기 일자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경쟁사인 TSMC의 수율은 삼성전자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도체 업계에선 TSMC 4나노 공정의 수율을 70~80%, 삼성은 50%대로 추정한다.

반도체 수율 설명./삼성전자 홈페이지 캡처

배터리 업체도 수율로 고심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에서 말하는 수율은 공장에서 배터리를 생산할 때 결함 없는 합격품이 생산되는 비율이다. 배터리 제조사들은 완성품에 대한 성능 테스트를 진행하고,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만 판매한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불량품의 경우 특정 부분만의 문제라면 해당 부분을 수정해 재검사하고, 부분 수정이 어려운 경우 분해해 원재료를 추출한 뒤 재사용한다. 이런 과정은 추가 비용을 발생시켜 수익성을 떨어뜨린다. 업계는 일반적으로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선 90% 이상의 수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수율이 안정화된 배터리 공장의 생산 방식을 다른 곳에 그대로 옮겨도 비슷한 수준의 수율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생산의 경우 작업자의 경험, 주변의 미세한 환경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수율이 잡힌 공장의 장비와 공정을 해외 신규 공장에 그대로 적용해도 동일한 수율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낮은 수율은 배터리 업계 후발주자 SK온의 흑자전환이 늦어지는 주된 이유로도 꼽힌다. SK온의 경우 지난해부터 본격 양산에 돌입한 미국 1공장과 헝가리 2공장 등에서 아직 수율 안정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이들 신규 공장의 수율은 70%대였으나, 최근에는 80% 전후까지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사 LG에너지솔루션(373220), 삼성SDI(006400) 공장의 수율은 90~95%대로 알려져 있다.

SK온이 개발한 E556 SF(Super Fast) 배터리./SK온 제공

국내 반도체·배터리 업체들은 수율을 높이기 위해 AI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SK하이닉스(000660)의 경우 지난해 12월부터 산업 AI 전문 스타트업 가우스랩스가 만든 가상 계측 AI 솔루션 ‘Panoptes VM’을 웨이퍼 위에 박막을 입히는 공정에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실제 데이터에 AI 기술을 활용한 가상 계측 모델을 적용하면 제조사는 100% 전수 검사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고, 수율 향상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업체들도 공정 자동화에 힘쓰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올해 북미 공장 내 자동화·검사 장비에 1조원이 넘는 비용을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기간 내 숙련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정 설비의 고도화를 통해 수율을 높이겠다는 목표다.

다만 첨단 장비 도입이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수율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한 배터리 업체 품질담당 직원은 “수율을 높이기 위해 새 검사장비를 도입하면 이전 기술로는 검출되지 않아 불량으로 판정되지 않았던 오류들도 새롭게 발견되면서 오히려 수율이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그래도 장기적으로는 오류를 해결하면서 품질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