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096770)의 배터리 자회사 SK온이 자금난으로 성장에 발목이 잡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적분할 이후 기업공개(IPO) 타이밍을 놓친 데다 상장 전 자금 조달(프리IPO)에도 실패하면서 경쟁사와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의 소송전 패배도 회사 자금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해석된다.

9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아직 상장과 관련돼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SK온은 모회사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 사업부가 물적분할돼 설립된 회사로, 형태만 보면 LG에너지솔루션과 같다. SK온은 LG에너지솔루션보다 약 1년이 늦은 지난 2021년 10월 물적분할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9월 LG화학에서 물적분할돼, 1년 4개월 후인 지난해 1월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했다.

업계에선 SK온이 LG에너지솔루션과 달리 적절한 상장 시기를 놓치면서 자금 조달에 진통을 겪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이후 이른바 ‘쪼개기 상장’으로 불리는 물적분할 이후 자회사를 상장하는 것에 대한 투자자 반발이 거세졌고, 주식 시장 상황도 점차 악화하기 시작했다. 불가피하게 상장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회사 성장을 가로막는 첫 걸림돌이 된 셈이다.

SK온과 미국 포드사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BOSK) 켄터키 관계자가 현장 부지를 설명하고 있다. /SK온 제공

그동안 핵심 사업부를 분할해 재상장하는 방식은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모회사 주주의 주주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금융당국은 규제를 강화했다.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주주들에게 주어진 주식매수청구권, 물적분할 공시 구체화 등이 대표적이다. SK온은 이미 분할된 상태지만 상장 심사에 이전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됐다.

한 업계 고위 관계자는 “SK온은 상장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과 다름 없다”며 “LG에너지솔루션처럼 증시 상황이 그나마 좋을 때 상장해서 자금을 끌어모으려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기차 배터리 산업 자체가 이제 개화하기 시작한 시장이기 때문에 국내 기업끼리 경쟁하기보다 규모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게 초기에는 중요한데, SK온은 상장 타이밍을 놓치면서 그 스텝이 꼬여버렸다”고 덧붙였다.

SK온의 자금난에 대한 우려는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당초 지난해 프리 IPO를 통해 약 4조원을 조달할 계획이었지만, 실제로는 8000억원 규모를 유치하는 데 그쳤다. 금리 인상 기조 등으로 자금 시장이 경색된 상황에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고 투자자에 불리한 조건을 제시한 것이 투자를 위축시켰다는 해석이 나왔다. 결국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이 SK온 유상증자시 2조원을 출자해 급한 불을 껐고, 이후 추가로 투자를 유치해 목표금액을 맞춰가는 상황이다.

올해부터 LG에너지솔루션에 1조원 규모의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는 점도 재무 부담을 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SK온은 2021년 4월 LG에너지솔루션과 2년 넘게 진행한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마무리했다. SK온이 현금 1조원, 로열티 1조원 등 2조원을 LG에너지솔루션에 지급하는 식으로 합의가 됐다. 현금 1조원은 이미 지급됐고 로열티 1조원은 올해부터 연간 매출액 일부를 일정 비율로 나눠 분납할 예정이다.

배터리업계가 전반적으로 고성장을 이어가는 가운데, SK온은 홀로 적자폭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SK온은 연간 매출액 7조6177억원, 9912억원 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2021년(3조398억원)보다 늘었지만, 영업손실(6831억원)폭도 늘었다. LG에너지솔루션(매출액 25조5986억원, 영업이익 1조2137억원)과 삼성SDI(매출액 20조1241억원, 영업이익 1조8080억원)는 모두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미국 포드와 추진하던 유럽 전기차 공장 설립 계획도 결국 무산됐다. 7일(현지 시각) 튀르키예 제조기업 코치그룹은 미국 포드와 SK온이 튀르키예 전기 상용차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을 위해 체결한 양해각서(MOU)가 종료됐다고 공시했다. SK온은 지난해 3월 포드와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 인근에 최대 4조원 규모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포드의 새 협력사는 LG에너지솔루션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