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이 지난 1년여 간 윤석열 대통령을 14차례 만나면서 재계 맏형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최 회장은 국내외에서 열리는 대통령 참석 행사를 주관하며 윤석열 정부의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SK그룹도 대규모 국내 투자를 단행하며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윤 대통령 역시 최 회장과 함께 경제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해법을 모색하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모습이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당선인 시절부터 이달까지 1년여 간 최 회장과 총 14차례 만남을 가졌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 구광모 LG(003550)그룹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윤 대통령을 4~7차례 정도 만난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많다.
최 회장은 지난 1일 윤 대통령의 경북 구미 방문에도 동행해 정치권과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윤 대통령이 올해 첫 지방 일정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를 선택한 점을 두고 보수 핵심 지지층의 결집을 이끌어내 집권 2년차 국정동력을 강화하겠다는 행보라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선친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전 구미에 설립한 금오공대를 인재양성전략회의 출범지이자 1차 회의 장소로 낙점했다. 윤 대통령은 금오공대를 가리켜 “탁월한 통찰력을 가지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립을 추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이,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라고 했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아 헌화하고 방명록에 ‘위대한 지도자가 이끈 위대한 미래, 국민과 함께 잊지 않고 이어가겠습니다’라고 썼다.
최 회장은 윤 대통령의 구미 방문에 맞춰 경북 지역에 총 5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 보따리를 풀었다. 이날 경북도와 구미시, SK실트론은 총 1조 2000억원 규모의 ‘실리콘반도체 웨이퍼 제조설비 증설’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이 자리에 윤 대통령과 최 회장이 참석했다. 최 회장은 2025년까지 경상북도에 모두 5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혀 윤 대통령의 구미 방문에 힘을 실어줬다. 윤 대통령도 격려사를 통해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하는 기업들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방문 후 구미 전역에 ‘윤석열 대통령님, 최태원 회장님 감사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최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으로 해외에서 진행된 대통령 참석 행사를 주관하면서 민관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2023 다보스 코리아 나이트(한국의 밤)’행사를 직접 주관하면서 ‘2030 부산 세계박람회(부산 엑스포)’ 유치 총력전을 펼쳤다. 최 회장은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도 맡고 있다.
한국의 밤은 2018년부터 외교부가 주관했던 행사다. 이번 다보스포럼에서는 대한상의가 한국의 밤을 주최했고 최 회장이 직접 행사를 주관했다. 당시 행사에서 윤 대통령이 호스트로 나서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홍보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한국의 밤 행사는 최 회장과 인연이 깊다. 한국의 밤은 2009년 최 회장의 제안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시작했다. 한국의 밤은 그 후 한국의 경제력과 문화 산업을 세계에 알리는 다보스포럼 대표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2016년 전경련이 국정 농단사태에 휘말리면서 이듬해 행사가 열리지 않았고 2018년에 행사 주체가 외교부로 이관됐다. 최 회장이 이번 한국의 밤 행사를 주관한 것도 이런 인연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은 스위스에 이어 윤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순방에도 함께했다. 윤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 회장과 칼둔 알 무바라크 무바달라 투자회사 최고경영자가 자발적 탄소시장(VCM) 파트너십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부응했다. 최 회장은 문재인 정부 기간에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궤를 같이 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의 전도사를 자임하기도 했다. SK그룹은 문재인 정부에서 덩치를 키워 현대차(005380)를 제치고 재계 서열 3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