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대면 영업에 의존해온 의약품 유통은 수금 지연, 여신 리스크(대출 회수 위험)라는 고질병에 시달렸다. 이 과정을 디지털로 전환해 연간 8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개원의 가운데 80%가 이용하는 플랫폼이 됐다. 진료 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의사들의 ‘슈퍼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의사들의 ‘쿠팡’이라고 불리는 이커머스(전자 상거래) 플랫폼이 있다. 8년차 스타트업 블루엠텍이 운영하는 ‘블루팜코리아(이하 블루팜)’다.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백신, 필러, 주사제 등을 유통하고 있다. 도매상과 영업사원의 손발에 의존하던 의약품 유통 과정을 디지털화했다. 제약사에는 선금결제를, 의료기관에는 합리적인 가격과 편리함을 제공하자 대기업 제약사들과 2만7000개 병원이 모였다. 지금까지 총 210억원을 투자 받은 블루엠텍은 올해 3분기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정병찬 공동대표는 “국내 병·의원이 총 3만4000개인데 아무리 큰 제약회사도 거래처가 1만개 안팎”이라며 “블루팜은 2020년 회원사 1만개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2만7000개를 달성했다. 블루팜의 유통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제약사들로부터 협약 문의가 이어지고 있고, 현재 30여개 제약사와 공급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그를 경기 용인시 기흥 지식산업센터에서 만났다.

정병찬 블루엠텍 대표가 블루팜 모바일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용인=이은영 기자

-의약품 시장에는 어떤 불편이 있었나.

“도매상이 과다한 상황이다. 2000년까지만 해도 500여개였는데 의약분업 이후 3300여개까지 늘어났다. 제약사는 너무 많은 도매상과 계약해야 하고 의료기관도 필요한 의약품을 충당하려면 구매처를 여러 곳을 확보해야 한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도매상 간의 의약품 거래행위인 ‘도도매’가 난무하기도 한다. 여러 손을 거쳐 유통되다 보니 가격이 올라간다.

의료기관이 의약품을 납품받으면 6개월 이내에 대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조항이 약사법에 명시되어 있을 만큼 수금 지연 문제도 고질적이다. 제약사가 도매상을 통해 의료기관에 의약품을 납품하면, 의료기관은 수개월 뒤에 대금을 갚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제약사는 현금 흐름이 꼬이게 된다.”

-블루팜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나.

“디지털로 풀었다. 블루팜은 의료기관을 상대로 전문의약품과 의약외품, 의료 소모품 등을 주로 판매하는 유통 플랫폼이다. 그동안은 제약사 영업사원이 거래처에 직접 찾아가 영업하고 주문받는 데 그치지 않고 월말마다 결제하고 배송까지 일부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과정을 플랫폼으로 옮겼다.

제약사는 우리에게 판매만 하면 의약품 정보 제공을 비롯해 결제·배송·반품 등 고객서비스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블루팜과 협약을 맺은 제약사의 영업사원은 거래처에 의약품 홍보를 하면서 ‘구매는 블루팜으로 하라’고 안내하기도 한다.

또 블루팜은 제약사로부터 의약품을 현금으로 직접 매입해 유통하기 때문에 제약사는 수금 지연에 따른 위험을 해소할 수 있다. 일도 줄고 현금 흐름까지 좋아지니 제약사는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저가에 의약품을 제공하게 되고, 블루팜은 회원에게 다른 유통 채널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의약품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블루팜 홈페이지 화면. /블루엠텍 제공
경기 용인시 기흥 지식산업센터에 있는 블루엠텍 사무실 내부. /블루엠텍 제공

-업계의 오랜 관행을 깨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후불제라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초기에는 블루팜에서 굳이 선결제로 약을 구매하는 회원 의사들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대형 제약사와의 제휴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니 회원이 모여들었다. 합리적인 가격과 편리성을 제공하니, 여러 구매처에서 상대적으로 고가에 의약품을 구매하던 의사들도 선결제라는 문턱을 넘어왔다.

특히 인간관계에 의존한 과거의 거래 행태와 달리 실리를 선호하는 젊은 의사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2020년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와 협약을 맺어 SK바이오사이언스의 거래처 1만개가 블루팜을 이용하게 된 것이 급속 성장의 계기가 됐다.”

-기존의 의약품 이커머스와는 무엇이 다른가.

“블루팜은 원내 의약품과 백신류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취급하고 있다. 기존의 의약품 이커머스는 기존의 제약회사가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자사 혹은 지배회사의 제품을 중심으로 의약품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블루팜은 SK바이오사이언스를 비롯해 한미약품(128940), 한독(002390), 보령(003850), LG화학(051910) 등 국내외 30여개 제약사와 공식 제휴를 맺고 의약품을 공급받고 있다.

회원사에게 제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정보도 함께 제공한다. 내 지역 동료 의사들은 어떤 약을 많이 구입하는지와 같은 의약품 사용 트렌드 분석이 될 수도 있고, 내가 구매한 백신이나 주사제의 유통기한이 얼마나 남았는지와 같은 의약품 정보가 될 수도 있다. 최신 진료·처방 트렌드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하는 웹심포지움도 제공한다. 제약사에는 의약품 재고관리 설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의사를 한데 모았으니 의약품 판매 이외에 다른 사업도 가능해 보인다.

“그렇다. 의료 업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의약품 위주의 B2B(기업 간 거래)뿐만 아니라 의사 개인이 필요로 하는 상품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의약품을 구매하려면 사업자등록이 필요하기 때문에 블루팜의 고객은 거의 개원의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고소득 집단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것과 같다. 최근엔 사무용 의자 중 명품으로 꼽히는 ‘허먼밀러’ 의자 판매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하루 만에 8000만원 어치가 팔렸다. 의약품 이외의 상품 판매는 작년부터 시작했는데 삼성전자(005930)LG전자(066570)를 비롯해 럭셔리 여행사 제품까지 입점해있다.”

블루엠텍의 올해 완공 예정인 평택물류센터 조감도. /블루엠텍 제공

-향후 목표는 무엇인가.

“우선 올해는 경기도 평택에 1만3000㎡(4000평) 규모의 콜드체인 풀필먼트센터를 완공할 예정이다. 자체 물류뿐만 아니라 냉장 물류가 필요한 제약회사나 도매상을 대상으로 위탁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 물류사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의약품 유통 데이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이 데이터를 상업화해 제약사 등에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중장기적으로는 우리가 가진 정보기술(IT) 기반의 설루션들로 이(블루팜) 안에서 진료 외에 모든 걸 다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표다. 컴퓨터를 켜면 포털사이트에 가장 먼저 접속하는 것처럼, 출근한 의사가 가장 먼저 접속하는 것이 블루팜이 되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