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무역규모가 역대 최대를 기록하며 세계 6위에 올라선 것으로 잠정 집계됐지만, 수출입 물류를 책임지는 컨테이너선 시장 점유율은 2017년 ‘한진해운 파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진해운 파산 당시 금융정책을 총괄했던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우리금융지주(316140) 신임 회장직에 도전한 상태다.

25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HMM(011200)의 아시아 → 미주 노선 점유율은 4.2%로 9위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됐다. SM상선은 1.1%로 14위였다. 얼라이언스(Alliance·해운동맹) 소속이 아닌 컨테이너선들까지 미주 노선에 몰리면서 HMM과 SM상선 모두 점유율이 전년보다 1%포인트 안팎 떨어졌다. 2016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현 HMM)의 미주 노선 점유율 10.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부산신항에 정박한 HMM의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에 컨테이너가 실리고 있다. /HMM 제공

선복량 역시 마찬가지다. 해운조사업체 알파라이너(alphaliner) 집계를 보면 HMM의 현재 선복량은 81만6365TEU(1TEU=20피트 컨테이너)다. 전 세계 선복량 가운데 3.1%다. 장금상선과 SM상선, 팬오션(028670) 등 다른 국적선사의 점유율을 모두 더해도 3.94%에 불과하다. 2016년 상반기 한진해운(3%)과 현대상선(2.1%·현 HMM)의 점유율 합계가 5.1%였던 것과 비교해 아직 한진해운 파산에서 온전히 회복했다고 보기 어려운 셈이다.

해외 선두 컨테이너선사와 체급차도 크다. ▲1위 스위스 MSC 17.6% ▲2위 덴마크 머스크(Maersk) 16.1% ▲3위 프랑스 CMA CGM 12.9% ▲4위 중국 코스코(COSCO) 10.9% ▲5위 독일 하파그로이드(Hapag-Lloyd) 6.8% ▲6위 대만 에버그린(EVERGREEN) ▲7위 일본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 5.8% 등이다. 개별 컨테이너선사가 우리 국적선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선복을 확보하고 있다.

2년여 동안 이어진 호황기에 주문한 컨테이너선들이 인도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MSC가 인도받을 예정인 선박은 133척·182만5276TEU로 국적선사 전체를 웃돈다. 코스코(88만4272TEU)나 CMA CGM(66만476TEU)도 대규모 건조계약을 맺은 상태다. HMM도 1만3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과 1800TEU급 컨테이너선 3척 등을 발주했으나 앞선 선사들에 뒤진다.

HMM이 보유한 컨테이너 터미널의 연간 처리용량도 1189만TEU로 한진해운·현대상선의 2015년 터미널 처리용량 1740만TEU에 못 미친다. HMM이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8조4000억원, 영업이익 10조원을 올리는 등 최대 성과를 냈지만, 아직 기초 체력을 보충해야 한다는 의미다.

HMM 매각 타당성 검토에 들어간 정부도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최적의 인수자 조건으로 “해운업을 키울 의지와 역량이 있는 기업”이라며 “적어도 국내 물류 네트워크와 접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미국, 동남아 등 거점 항만의 터미널과 공동물류센터를 확보하는 것을 비롯한 인프라 투자도 계획 중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갖고 있던 컨테이너 터미널 지분을 헐값에 외국 선사에 넘겨줬지만, 지금은 금값이 됐다”며 “최근 컨테이너선 시황이 급락한 상황에서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도록 전략을 꼼꼼히 점검할 때”라고 말했다.

국내 1위‧세계 7위 컨테이너선사였던 한진해운은 2016년 8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한진해운의 갑작스러운 법정관리 신청으로 전 세계 항만에서 한진해운 선박을 억류하거나 화물 하역을 거부하는 등 물류대란이 벌어졌고 이듬해 2월 파산 선고를 받았다.

공적자금을 투입해 한진해운을 살려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으나,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금융당국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반대했다.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해수부와 해운·항만 물류 동향 등 만약의 사태에 대한 문제를 논의했으나, 한진해운이 선적 화물에 대한 화주, 운항 정보 등을 제공하는 데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다”며 “질서 있게 대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와 한국해운물류학회 주관으로 2019년 발간된 ‘한진해운 파산 백서’는 해운 전문성이 없는 경영진이 선박 투자에 실패하면서 위기가 시작됐고, 정부도 해운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파산을 결정해 국가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