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000880)그룹이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을 새 먹거리로 삼고 관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화시스템(272210)을 필두로 지난 2019년부터 UAM 사업에 뛰어든 한화그룹은 최근 계열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의 전 부사장을 임원으로 영입하면서 공격적인 UAM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16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류광수 전 KAI 부사장을 영입했다. 그는 이달 초부터 정식 근무를 시작했는데, UAM 사업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광수(왼쪽) 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부사장./KAI 제공

1964년생인 류 전 부사장은 서울대에서 항공공학 학사·석사 과정을 마치고 1988년 KAI의 전신인 삼성항공에 입사했다. 이후 항공전자 체계 담당(상무보)과 고정익 개발본부장(상무), KF-X 사업본부장(전무)을 거쳐 지난 2021년부터 고정익사업부문장(부사장)을 맡아 왔다. 그러나 지난해 9월 강구영 사장 취임 직후 단행된 조직 개편 과정에서 해임을 통보받았고, 이후 한화 측에서 접촉해 영입했다.

업계에서는 류 전 부사장이 KAI에서 항공기 기체개발과 관련한 업무를 진두지휘해 온 항공공학 전문가인 만큼, 한화그룹의 미래 사업인 UAM 분야에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류 전 부사장은 항공기 기체 개발, 수출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전문가인 만큼 본인의 노하우를 통해 사업 방향성, 전략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UAM 시장 선점 노리는 한화, 3년간 2100억원 투자

한화그룹은 방산·우주항공 계열사 한화시스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통해 지난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UAM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화시스템은 미국의 UAM 기술 선도기업 오버에어(Overair) 사에 2019년 2500만달러(약 300억원)를 투자했고, 2020년부터 전기식 수직이착륙기 ‘버터플라이’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이듬해인 2021년 8월 오버에어에 3000만달러(약 370억원)를 추가 투자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에는 한화시스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오버에어에 각각 5000만달러(약 620억원), 6500만달러(약 800억원)를 오픈형 전환사채 형식으로 추가 투자하며 개발에 힘을 보탰다. 양사가 지금까지 UAM 사업에 투자한 비용을 모두 합하면 2100억원에 달한다.

UAM 개발 과정에서 한화시스템은 자체 보유한 항공전자 및 ICT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체 개발‧버티포트(정류장)‧교통관리 서비스 등을 맡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UAM 기체의 엔진 역할을 할 배터리 기반 전기추진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한화시스템이 미국 기업 오버에어와 공동개발하고 있는 UAM(도심항공교통) 기체 '버터플라이(Butterfly)'. /한화시스템 제공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향후 장거리·다인승 등의 형태로 다변화될 UAM 기체에 맞춰 가스 터빈이나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전기 배터리와 결합한 ‘미래형 하이브리드 전기추진체계’도 개발 중이다. 지난해 1월 산업통상자원부·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주관하는 ‘UAM 연료전지 경량화 기술개발’ 과제를 수주하며 UAM용 수소연료전지 개발을 시작했다.

한화시스템·한화에어로스페이스·오버에어는 올해 상반기 중 실물 크기의 무인 시제기 제작을 마칠 예정이다. 만들어진 시제기는 각종 비행시험을 통해 항행 관련 기술 검증을 마치고, 2025년 국내 시범 운행을 시작한다는 목표다. 현재 개발 중인 UAM 버터플라이는 4개의 틸트로터(Tilt-rotor)가 장착된 전기식 수직 이착륙 항공기(eVTOL)다.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비행기는 프로펠러를 하늘로 향하게 하면 수직으로 이륙할 수 있어 활주로가 필요 없고, 비행 중에는 이를 수평 방향으로 바꿔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대 시속은 320㎞로, 용인 터미널에서 광화문역까지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고 한화시스템은 설명했다.

한화그룹이 UAM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는 높은 성장성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20년 K-UAM 로드맵을 발표하며 세계 에어 모빌리티 시장이 2040년까지 73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이보다 높은 1조5000억달러(약 1800조원) 규모까지 UAM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봤다. 연평균 성장률은 30.4%에 달한다.

반면 UAM 시장은 아직 무주공산이다. 국내에서는 현대차(005380)그룹, 대한항공(003490) 등 굵직한 기업들이 잇달아 UAM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선 UAM 기체 개발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성능 시험, 시범 비행 등을 성공적으로 마쳐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KF-21 '보라매' 전투기(맨 앞)과 무인 전투기 편대 컴퓨터그래픽./방위사업청 제공

◇ 전투기 개발 이어 KAI 인수?… 한화 “아직 계획 없어”

일각에선 류 전 부사장의 영입을 통해 한화그룹이 향후 전투기 기체 제작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류 전 부사장은 KAI에 입사한 이래 35년간 전투기 개발에 매진해 왔으며 FA-50, KF-21 개발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특히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를 앞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향후 전투기 기체 생산 능력까지 갖추면 육·해·공을 아우르는 ‘한국형 록히드마틴’이라는 목표를 진정한 의미에서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류 전 부사장의 영입이 KAI 인수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전투기 등 기체 개발에는 막대한 자본뿐만 아니라 관련 시설과 기술이 필요한데, 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엔진과 관련해서는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항공기 기체 개발과 관련한 시설 및 기술은 전무한 상황이다. 한화가 기체 개발에 장점을 가진 KAI를 인수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도 기대감을 높인다.

한화 측은 류 전 부사장의 영입은 전투기 생산, KAI 인수 등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류 전 부사장의 경력과 능력을 고려했을 때 한화가 추진 중인 사업의 적임자로 판단돼 영입한 것으로 안다”며 “아직 전투기 기체 개발, KAI 인수 등과 관련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