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방문한 전남 영암군 삼호읍에 있는 현대삼호중공업 공장에서는 최신 LNG 화물창용 자동용접장치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구형 모델은 작업자가 리모컨으로 조작을 해야 했는데, 새 모델은 작업자의 최초 지시 이후 별다른 개입이 필요 없다. 용접 불꽃으로부터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떨어진 위치에 부착돼 ‘눈’ 역할을 하는 비전센서 덕분이다.

초대형(17만4000㎥급) LNG운반선에는 거대한 LNG 보냉 탱크 4기가 들어가는데, 새 자동용접장치는 각 탱크마다 8대씩 투입돼 1차방벽 전체 용접량의 80% 이상을 담당한다. 화물창의 1차방벽은 LNG와 직접 맞닿는 부분으로 매우 꼼꼼히 시공해야 한다. 시공능력은 LNG운반선의 건조기간 및 내구성과 직결된다.

현대삼호중공업의 라인용접기(라인웰더). 라인용접기는 수십명이 해야 할 용접작업을 혼자 해 조선소 생산 자동화의 대표적 설비로 꼽힌다. /한국조선해양

용접 경로 위에 LNG 화물창 특유의 볼록 주름이 나타나도 별다른 추가 지시가 필요하지 않았다. 용접품질 역시 수작업에 비해 좋았다. 조선업계는 한국과 중국 간 자동용접 기술 격차가 수년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은 조선업의 최강자다. 상선 중 가장 만들기 어렵고 부가가치가 높다는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작년 신조 물량 168척 중 120척을 한국 조선소가 수주했다. LNG운반선 주문의 나머지는 중국 조선소가 가져갔는데, 그나마 한국 조선소가 가득 차 어쩔 수 없이 중국을 찾아간 물량이 많다.

경쟁사 중국 국영 쟝난조선(江南造船)의 기술 책임자는 최근 한 외신 인터뷰에서 LNG운반선 건조에 필요한 시간이 한국 조선소는 약 16개월인 반면, 중국운 20개월 이상이라며 자신들의 경쟁력은 5~7% 저렴한 선가라고 할 정도다.

그러나 한국 조선업계가 세계 최정상을 지키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바로 인력난이다. 한국조선플랜트협회는 올해 부족한 기능인력이 한해 평균 약 1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한국 조선업계는 생산 자동화와 효율화로 이 같은 난제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현대삼호중공업의 LNG화물창 내부 1차방벽용 자동용접기의 용접결과(왼쪽 위). 오른쪽 위의 수동용접결과와 비교해서 품질이 일정하다. 본 용접 전에 하는 가용접(왼쪽 아래)도 수동용접용 가용접(오른쪽 아래)에 비해 간단하다. /박정엽 기자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010140) 등 한국의 대형 조선 3사는 2017년부터 작년까지 1조2000억원이 넘는 금액을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 친환경선박 등 새로운 선종(船種) 개발뿐 아니라 생산 자동화에도 큰 돈을 투자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인 숙련 노동력이 대거 업계를 떠나고 그 자리를 기량이 부족한 외국인들이 채우면서 품질 대책이 절박했다.

한국조선해양은 산하 조선소 세 곳(현대, 현대삼호, 현대미포)의 기업부설연구소마다 R&D 영역을 특화했는데, 현대삼호는 생산 자동화에 역량을 집중했다. 현대삼호의 기업부설연구소(자동화혁신센터)는 2018년부터 작년 3분기까지 총 12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자동화 장비와 용접 기술 등을 개발해왔는데, 이는 같은 기간 한국조선해양의 전체 R&D 투자액 4100억원의 약 30%에 달한다.

그래픽=이은현

대우조선은 옥포조선소의 자동화 및 효율화 덕을 톡톡히 봤다. 지난해 여름 하청노조의 조선소 내 생산시설 점거로 공정이 지연되자 발주처에 지체 보상금을 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는데, 생산 속도를 높여 해결했다. 연간 700억원 안팎을 R&D에 투자하며 쌓아올린 결과다.

대우조선은 2020년 선수·선미의 곡선형 블록 제작에 쓰이는 열간가공 로봇 ‘곡누리’를 개발해 현장에 적용했다. 이에 따라 어려운 작업환경에서 고숙련자에 의존했던 작업을 간단한 교육을 마친 비숙련자도 할 수 있게 됐다. 로봇 투입후 해당 공정의 생산성은 350~400% 향상됐다고 한다.

2015년에는 쇄빙선의 내부 격벽 등 좁은 공간의 용접에 투입되는 로봇 ‘캐디’를 개발해 생산 현장에 투입했다. 2018년부터는 이를 업그레이드한 로봇 ‘인디’도 사용된다. 캐디가 투입된 공정은 투입 전 대비 생산성이 약 67% 증대됐다. 선박과 해양플랜트에 무겁고 복잡한 전선을 설치하는 작업은 전선포설 로봇으로 자동화해, 연간 2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고 작업자의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거제조선소에서 협동로봇을 용접 공정에 활용해 생산성을 약 40% 높이고 안전사고 위험성을 줄였다.

대우조선해양이 개발한 조선소용 생산 자동화 설비들. 왼쪽은 선수·선미의 곡선형 블럭 제작에 쓰이는 열간가공 로봇 ‘곡누리’. 오른 쪽은 좁은 공간의 용접에 투입되는 로봇 ‘캐디’. /대우조선해양

한국의 조선소는 꾸준한 자동화로 생산성이 1990년대 중반 대비 대략 2배가 됐다. 한 조선소 임원은 “처음 조선소에 입사했을 때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제작에 들어가는 품은 약 95만 공수(工數·작업에 필요한 노동시간. 조선업계에서 1공수는 한 사람의 8시간 작업량)였는데, 라인웰더 등 자동화 용접 장비가 정착한 지금은 48만 공수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업계 호황기였던) 2010년쯤과 비교해도 생산성이 약 10~15% 향상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자동화를 더 발전시킨 ‘스마트 야드’로 경쟁자와의 격차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자동화 설비가 생산한 데이터를 활용해 조선소 운영을 최적화하고 인력난에서 벗어나는 ‘지능형 자율운영 조선소’로 가겠다는 구상도 세웠다.

현대삼호는 빅데이터 플랫폼 파일럿 테스트를 수행해, 2019년 도입한 QR코드와 비전센서로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해 공정을 최적화했다. 용접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즉각 대처해 재작업 비용을 줄이는 식이다. 이 회사는 지난 9월에는 미국의 팔란티어사와 기업용 빅데이터 플랫폼 ‘파운드리’를 도입하는 계약을 맺고 설계부터 생산까지 디지털 트윈을 구현하기로 했다.

삼성중공업도 2020년 조선해양연구소 내 스마트야드연구센터를 신설하고 2023년까지 320억원을 투입해 스마트야드 기획, 디지털트윈 및 생산자동화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다. 대우조선도 2032년까지 390억원을 투자해 스마트야드를 구축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핵심기술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삼호중공업 영암조선소 내 적치된 부재에 공정관리를 위해 인쇄된 QR코드. /한국조선해양